외상후 성장에 대하여
****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온갖가지 일을 경험하는데, 굉장히 힘들고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힘든 상황이 눈앞에 닥치는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니체의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고는 한다. 이미 사람들에게 꽤 많이 알려진 문구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경우에 따라 절망감이 한없이 커질 때면 저 말이 헛소리로 보이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으면 그냥 다 포기하고 싶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저 말에 깊게 동의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내몰릴 때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나를 지탱해 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게 그냥 적어놓고 보니 좀 이상하게 읽히는데, 조금만 더 풀어서 설명해 보겠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스스로를 구하는 데 꽤 능숙한 편이다. 그래서 과거의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그렇게나 열심히 나를 구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 상황도 분명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조금은 다잡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심리학에는 '외상후 성장'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외상 사건과의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일컫는 용어이다. 지난 글에서 PTSD의 핵심 증상 중 하나가 회피 증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외상 사건과 관련된 기억, 외부 단서 등을 회피하려고 하는 행동을 말한다. 그러나 외상후 성장 이론에 따르면,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상 경험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과 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면해야 한다. 더불어 이 과정에는 개인 혼자만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지지도 있어야 한다.
외상후 성장과 관련해서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살펴보자.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5편에서 해리는 PTSD 증상에 시달린다. 하지만 작중에서 해리가 이를 극복해 내는 걸 볼 수 있다. 이를 잘 뜯어보면 앞서 언급한 외상후 성장 이론이 꽤 잘 반영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리는 불사조 기사단편 전반에서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5편이 끝날 때는 자신의 주변에 친구와 동료들이 있음을 인식하며 안정을 되찾는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사회적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이 5편이 끝나고, 6편 초반부로 넘어가면 덤블도어가 해리를 데리고 슬러그혼 교수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슬러그혼이 교수직으로 돌아오도록 설득에 성공한 후 두 사람은 버로에 도착하는데, 거기서 덤블도어의 제안으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화에서 해리는 시리우스의 죽음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터놓고 말한다. 소설 속에서 해리는 자신의 행동을 '어리석다'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이건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작품 속 해리가 보여준 용기 중에서 가장 큰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해리 포터는 드라마 장르나 성장물은 아니다. 그래서 해리의 내적 성장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내가 상상해 본 바로는, 여름방학에 더들리네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해리는 혼자 끊임없이 상실 경험에 대해 자기 노출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해리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불사조 기사단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받은 지지를 토대로, 세드릭과 시리우스의 죽음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 결과 해리는 자신이 볼드모트를 쓰러뜨릴 수 있길 바라며, 버로에서 덤블도어에게 자신의 결의를 말하기에 이른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소설 속 내적 성장 과정은 그저 픽션일 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시련과 극복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해리 포터 같은 영웅 스토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냉혹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현실에서는 힘든 경험들이 항상 건설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은 힘든 거니까.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평가절하할 필요도 없다. 불사조 기사단에 나온 덤블도어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결코 치유되지 않는 상처도 있는 법이다. 그래도 '가끔은'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부정적인 경험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다 보면 언제 한 번쯤은 이전과는 다른 경험이 펼쳐지는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