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블도어의 삶과 선택들에 대하여

by 담결

****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심리치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업 중 하나는 바로 '통합'이다. 용어는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이나 사건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돕는다는 의미이다. 범죄와 같은 일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대부분은 모두 양면적이고 입체적인 측면이 있다. 마냥 옳고 좋기만 한 것도, 100%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단순히 주인공을 가장 좋아했다. 아무래도 서사가 주인공 중심으로 흘러가니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현재의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이다. 단순히 선하고 올바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상처와 약한 면이 있는 인물을 선호한다. 옳든 그르든 자신이 가졌던 이상이 무너져서 절망한 경험이 있으며, 한번 크게 구부러진 이상을 조심스레 펴내어 다시 쫓는 사람.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내 취향에 가장 부합하는 캐릭터는 덤블도어라고 생각한다.


덤블도어라는 캐릭터의 사적인 삶은 죽음의 성물 편에서나 언급된다. 그리고 1~4편까지 그는 오점과는 거리가 먼 현명하고 완벽한 현자로 그려졌다. 덤블도어가 완전무결한 인물로 보이는 이유로는 3가지가 있다. 첫째, 내용 상 늘 마지막에 해리에게 사건의 진실과 배후를 알려주는 역할로 묘사된다. 특히 마법사의 돌과 비밀의 방 편이 그렇다. 둘째, 선한 마법사로서 세계관 최강자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볼드모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마법사이고, 5편에서는 실제로 덤블도어와 볼드모트가 싸우는 장면도 나온다. 셋째, 소설 속 명대사가 대부분 덤블도어의 대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덤블도어의 대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위에 첨부한 사진에 있는 대사다. 저 대사는 비밀의 방 마지막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해리와 덤블도어가 병동에서 나누는 대화 중 일부이다. 그는 해리가 스스로의 의지로 슬리데린이 아닌 그리핀도르에 가기를 선택한 것이, 그가 진정한 그리핀도르임을 보여주는 예시 중 하나라고 말한다. 나도 한 인간의 성격의 핵심은 '선택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태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직업, 스펙, 재산, 재능 같은 요소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가 그 인간에 대한 핵심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덤블도어는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 나는 그의 선택은 모두 '참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기 위한 선택을 반복한다.


덤블도어는 천재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가족을 걸림돌이라고 여겼다. 여동생 아리아나가 머글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건 때문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온 가족들은 여동생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는 딸의 복수를 했다가 아즈카반에 갇힌 채 돌아가신다. 게다가 아리아나가 일순 마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사건으로 어머니까지 죽는다. 덤블도어는 원치 않게 가장이 되었고, 아픈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게 하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다 자신만큼이나 재능이 많은 그린델왈드와 만나 깊이 교류하게 된다. 그 시기가 덤블도어의 흑역사이지 않았을까 한다. 머글들을 마법사들이 지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그린델왈드와 그걸 실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니 말이다. 그러다 남동생 에버포스가 덤블도어의 계획에 반대하면서 그린델왈드와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아리아나가 사고로 죽는다. 그 사건은 덤블도어의 인생에 결코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로 남는다.


작중에서 덤블도어의 선택이 드러나는 대목이 2가지 있다. 첫째는 그가 호그와트 교사로 남은 것이다. 아리아나의 사망 이후로 그는 자신은 권력을 손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법 정부 총리자리를 거부하고 호그와트에 남는 쪽을 선택한다.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해리가 볼드모트를 쓰러뜨릴 수 있도록 개인 수업을 해주기도 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 불사조 기사단과 같은 비밀조직을 창단하여 어둠의 마법에 맞서 싸우다 죽는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둠의 마법사에게 동조했던 과오를 평생을 받쳐서 참회한 것이다.


둘째는 해리에게 진실을 마주하도록 도왔다는 점이다. 불의 잔 편에서 해리가 묘지에서 돌아온 후, 무디 교수가 해리를 연구실로 데려간다. 그 모습을 보고 덤블도어는 그 무디는 실제 본인이 아닌 폴리주스 마법약으로 위장한 가짜라는 사실을 간파해서 바티 크라우치 2세를 잡아낸다. 맥고나걸 교수는 다친 해리를 바로 병동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덤블도어는 해리가 진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진실을 직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드릭의 죽음의 배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말이다.


한편 덤블도어는 아마도 자신의 선택은 오로지 본인만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 그 자신은 평생을 참회하는 데 바쳤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처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4권 말미에 코넬리우스 퍼지 총리는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덤블도어는 여러 차례 그 사실을 알려주면서 미래를 위한 충고를 해주지만, 총리가 끝까지 생각을 고수하자 각자의 길을 가자고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이런 태도는 덤블도어가 한편으로는 '진실'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동생을 죽게 만든 마법을 쏜 사람은 어쩌면 그린델왈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생토록 시달린 덤블도어. 자신에게도 여전히 두려움과 회피적인 측면이 있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두려움도 존중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언급했던 코넬리우스 퍼지와의 대화도 그렇고, 네빌이 스스로 부모님에 대해 타인에게 얘기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그의 이런 면이 잘 드러난다.


평생을 참회했지만 정작 가장 중대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덤블도어. 그래서 부활의 돌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돌이 박혀있던 호크룩스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 실수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조차 볼드모트에게 맞서는 기회로 이용해 버린다. 그를 강하기만 하다고도, 약하기만 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덤블도어의 서사를 살펴보면 약점이 강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약점은 어쩌면 덤블도어가 그랬듯, 남에게 차마 말하기 껄끄럽고 평생 동안 끌어안고 가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약점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 덕에 다른 사람을 한번 더 존중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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