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작성할 때 Glen O. Gabbard의 저서 [역동정신의학]을 상당 부분 참고 & 인용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자기애성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일상이 얼마나 멋진지를 게시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하트'를 받는 것을 우선시하며, 케이팝 노래에서 자기애, 나르시시즘과 관련된 주제가 다뤄지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해질수록 본질과 깊이는 등한시되고 피상적인 관계와 이미지가 강화된다.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그의 저서 [불안 세대]에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된 이유로 미디어와 SNS를 꼽았다. SNS를 통해 자신과 지나치게 이상화된 타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부정적인 자기개념을 획득하고 우울,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을 남들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일까?
살아갈수록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인 자기개념과 적절한 자존감은 우리 삶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자기애에도 '병리적인 자기애'가 있다.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고, 단점이 있으며, 때로 그릇된 생각을 품기도 한다. 이런 면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자신을 과도하게 이상적인 존재로만 바라본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면이 성격적 특성으로 굳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전문용어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 용어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이름에서 어렴풋이 느껴지겠지만, '성격장애'에는 그 특성이 보다 만연하고 변화가 어렵다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진단을 내리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병리적 자기애가 성격 특질(trait) 중 하나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심각도가 약하다면,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진단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의외로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을 보이는 캐릭터는 볼드모트이다. 사실 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진단해야 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신에 대한 과대한 느낌을 가지며, 타인에게 존경을 요구하고 공감이 결핍된 성격적 특성이 두드러질 때 진단될 수 있다. 볼드모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을 절대적이고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지, 그 특권의식을 기반으로 타인을 착취하고 파괴하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소설 내에서 빌런으로 나오니까. 그래서 설명 방식을 조금 색다르게 하고 싶다. 볼드모트의 중대한 3가지 실수를 통해서 그의 나르시시스트적 특성을 파악해 보자.
그의 첫 번째 실수는 호크룩스를 만들 물건을 선택할 때 너무나 추적가능한 물건들을 골랐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호크룩스가 되어버린 해리를 제외하면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는 총 6개였다. 그것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 리들의 일기장
- 곤트의 반지
- 내기니
- 슬리데린의 로켓
- 후플푸프의 잔
- 래번클로의 보관
내가 호크룩스들을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순서가 아니라 이렇게 나열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 3가지는 볼드모트 자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아주 사적인 물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일기장, 어머니의 가문에서 전해 내려 온 가보, 본인이 항상 데리고 다니는 뱀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뒤에 적은 3가지는 모두 호그와트 설립자들을 대표하는 보물이다. 이런 물건을 고른 것은 볼드모트가 자신을 굉장히 위대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영혼을 담아둘 물건이라면 그만큼 진귀한 물건이어야 하니까, '호그와트 설립자'라는 대단한 인물들의 물건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덕에 해리와 덤블도어가 나머지 호크룩스가 어떤 물건일지를 추측할 수 있었고, 끝내 그것들을 찾아서 파괴하기까지 가능했다. 볼드모트의 오만함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볼 수 있겠다.
둘째로 볼드모트는 집요정의 마법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호크룩스 중 하나인 슬리데린의 로켓을 보관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함정을 마련해 둔다. 그게 바로 혼혈왕자 편 후반부에 해리와 덤블도어가 찾아간 동굴이다. 그곳은 인페리우스가 드글거리는 호수로, 고통과 환각에 빠지도록 만드는 마법약도 있었다. 심지어 그는 그 장소를 만들 때 자신의 부하였던 레귤러스 블랙의 집요정인 크리처를 실험 대상으로 쓴다. 크리처를 거기에 던져두고 함정들이 잘 발동하는지를 봤던 것이다. 그 장소는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는데, 놀랍게도 크리처는 순간이동으로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집요정의 마법 체계가 인간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드모트는 그 사실을 몰랐다. 자신의 마법을 완전무결하다고 여겼고, 집요정은 그저 자신보다 하등한 생물로만 취급했기에 그런 빈틈이 생길 수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크리처를 통해 그 로켓이 있는 장소가 알려졌고, 더 나아가서 로켓이 파괴되는 일도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볼드모트의 가장 큰 실수는 스네이프의 사랑을 별 것 아닌 욕망으로 치부했다는 점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볼드모트의 결함이 있다. 그건 바로 그는 '사랑'을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동정신의학]이라는 책에서는 병리적 자기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병적인 형태의 자기애는 그 사람의 대인관계가 어떠하냐는 것에서 더 쉽게 드러난다. 이들의 비극은 바로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자기애성 환자는 타인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만 타인에게 접근하거나 멀어지곤 한다. 타인을 인격체로 보지도 않고 또 자기와 같이 어떤 욕구를 가진 존재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 환자들은 대개 자신의 욕구가 만족되면 곧바로 관계를 끝내 버린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극도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이타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볼드모트는 스네이프의 감정을 단순한 욕정이라고 여기고, 릴리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스네이프가 그녀를 사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다. 그래서 스네이프의 2중 첩자 생활이 가능했고, 해리도 그 도움을 많이 받는다. 또한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그가 볼드모트와 달리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해리가 가진 큰 힘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비록 혼혈왕자 편에서 해리가 그 말을 들을 때 그게 '힘'이라는 점을 납득하지 못했지만, 소설의 결말을 보고 나면 덤블도어의 말은 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수준에서는 타인을 개별적인 인격체로 보기보다 자기를 충족시켜 주는 원천으로 여기려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아무리 튼튼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타인의 인정과 수용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극단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자신도 죽음에 이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자기애성 성격이 어떤 이유로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도 많다. 하지만 이 글에서 그 부분을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정신건강 전문가로 근무할 때는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해리 포터 시리즈의 빌런인 볼드모트의 행적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볼드모트의 악행에 어떠한 이유나 정당화도 덧붙이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이 글도 단지 그의 성격을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를 붙여 묘사하는 것에 그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