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브런치북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우울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자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마음에 떠오른다. 사람은 무엇에서 삶의 동력을 얻을까? 무엇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걸까? 정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행복'이 '우울'을 이겨내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은 나와 생각이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예전에 영국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해리 포터 덕후인 만큼 작품과 관련된 투어를 충실하게 즐겼었다. 그중 에든버러 시내에서 진행하는 해리 포터 무료 투어를 신청했었다. 그때 가이드님이 말해주셨던 이야기 중 하나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롤링이 이 작품을 지필 할 당시에 꽤나 힘든 삶을 살고 있었고, 그 부분이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작중에서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디멘터'라는 마법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디멘터는 아즈카반의 죄수 편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그들은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의 간수이다. 소설 속에서는 디멘터의 겉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디멘터에 대해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설명하곤 한다. 어디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롤링은 '우울증'을 그대로 생명체로 만든다는 느낌으로 디멘터를 상상해냈다고 한다. 디멘터의 어둡고, 불분명하고, 축축하고, 불쾌한 외형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디멘터가 있을 때 버틸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설 속에서는 애니마구스로서 동물로 변신하거나, 디멘터가 제거하는 '긍정적인' 감정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신념에 의지하는 등의 대처방식이 나온다. 하지만 디멘터를 직접 물리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패트로누스 마법을 쓰는 것이다. 이 마법은 해리 포터 세계 속에서 흔치 않은 정신계 마법인데, 주문을 외울 때 아주 행복한 기억이나 상상을 떠올려내야 한다. 실제 디멘터와 대면한 상태에서 마법을 시전 하기가 상당히 어렵기에, 난도가 높은 고급 마법으로 취급된다. 이게 어느 정도 나면, 작중에서 헤르미온느가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마법이며, 호그와트 퇴학이라는 중대한 문제가 걸린 청문회가 진행되던 도중에 본즈 장관이 해리가 수년 전부터 온전한 패트로누스를 불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 해리가 OWL 시험을 칠 때는 패트로누스 마법을 성공시켜 어둠의 마법 방어법 과목에서 특출함을 받기까지 한다.
소설에서 '우울'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외적인 생물로 구현하고, '행복'이라는 긍정적 감정을 마법사의 내적인 힘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작가가 가진 견해가 드러난다. 아마도 롤링은 우울은 소거될 수 있는 외부의 적이고, 행복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일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현실에서 우울은 디멘터처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울이든 행복이든 모두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마음속 슬픔을 부정하고 억지로 즐거운 생각으로 채우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심리학에는 여러 가지 치료 이론이 있다. 그중에서도 감정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바라보는 인지행동치료 접근이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면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치료 이론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현재 인지행동치료는 3세대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제3 동향에서는 이전과 달리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 및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수용할 것인지를 중요시한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쉽게 말하면 우울해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우울증은 사람마다 너무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만능 해결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라면 다소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선 나는 슬픈 일이 있으면 일단 충분히 슬퍼하려고 한다. 참거나 억지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려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걸 경험한 뒤로 더욱 그랬다. 때로는 오히려 상태가 심각해지기도 한다. 내가 그 슬픔을 제대로 '겪고' 나면, 놀랍게도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던 다음 단계가 열린다. 그러다 보면 또 즐거운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뭐라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힘으로 다음 시간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