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보가트, 불안과 두려움을 다루는 법

by 담결

****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지금이야 크면서 여러 모로 많이 나아졌지만, 어릴 때는 정말 무서워하는 게 많았다. 특히 개를 무서워해서 길에서 우연히 작은 강아지라도 마주치면 곧바로 뒤돌아서 냅다 도망을 칠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은 경우에 따라 강아지를 껴안고 누워서 뒹굴거릴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동물 공포증 말고도, 우리는 현실에서 많은 것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지난 글의 디멘터에 이어서,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인간의 감정을 투영해서 만들어진 또 다른 마법 생명체가 있다. 바로 보가트이다. 보가트는 아즈카반의 죄수 편에서 처음 소개된다. 루핀 교수가 어둠의 마법 방어법 수업에서 보가트에 대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보가트는 본래 모습이 어떤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생명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존재이다. 그래서 모습이 계속 변하는데, 네빌의 경우는 스네이프 교수, 론은 거미, 해리는 디멘터였다.


3편 아즈카반의 죄수, 제7장 옷장 속의 보가트에서 발췌


작중에서 보가트를 물리치는 방법은 '리디큘러스'라는 주문을 외워서 보가트의 모습을 재밌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이 역시도 패트로누스 마법처럼 시전자의 정신력이 요구되는데, 두려운 상황에서 생각을 전환해서 재밌는 상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기법에는 꽤 심리학적인 지혜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심리치료 방법 중 하나인 인지행동치료에서는 인간의 감정은 우리의 인지체계, 즉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치료 장면에서 반드시 이뤄지는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인지적 재구조화이다. 쉽게 말해 외부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컵 안에 똑같은 양의 물이 담긴 걸 보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마음이 여유롭지 않겠는가. 그래서 재밌는 생각을 떠올려서 보가트를 물리친다는 발상은 상당히 심리학 이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3편 아즈카반의 죄수, 제7장 옷장 속의 보가트에서 발췌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마법을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포,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고 극복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치료 장면에서는 2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는 위에서 설명한 인지적 재구조화이다. 둘째가 사실 꽤 핵심적인 요소인데, 바로 노출이다. 이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그 대상이나 상황을 실제로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나의 개 공포증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크면서 자연스럽게 길에서 만나는 개들은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인지적 &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길에서 산책 중인 강아지들의 곁을 지나가는 것은 가능해졌다. 거기에 더해서 반려견을 데리고 살던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 갔던 일이 결정적이었다. 어릴 때와 달리 인지적으로는 반려견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접근'은 가능했다. 그리고 점점 강아지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고, 점진적으로 무릎에 앉히기, 같이 누워서 뒹굴거리기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현재까지도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의 공포증을 앓고 있다면, 아마 나의 경우처럼 일상적이고 사적인 수준에서 노출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이고 조심스러운 노출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는 방법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라는 것만은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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