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방어기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방어'라는 단어는 외부의 공격을 저지하려는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이 용어는 불편한 상황이나 욕구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를 지키려고 취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자아가 신경증적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책략을 방어기제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스스로 수용하기 어려운 욕망을 부정하는 부인(denial), 한 대상에 대한 욕구를 다른 대상을 통해 대리충족하는 대치(displacement), 그럴듯한 현실적인 이유를 붙여서 불안을 회피하는 합리화(rationalization) 방어 같은 것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주되게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으면서, 유독 특유의 방어기제가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해리의 이모인 피튜니아 더즐리였다.
위에 첨부해 둔 발췌본을 보면 알 수 있듯, 소설을 읽다 보면 피튜니아 이모가 더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청소와 깔끔함에 집착한다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불사조 기사단편에서 선발대가 해리를 데리러 프리빗가 4번지를 찾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선발대에는 님파도라 통스가 있었는데, 해리의 방으로 오는 길에 더즐리네 집을 둘러보더니 '너무 깨끗해서 이상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단순히 깔끔 떠는 성격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업병이 뼛속깊이 퍼져있는 나는 이 묘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나치게 청결을 유지하려는 행동은 일종의 강박증상으로 볼 수 있다. 강박증상은 크게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강박행동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말한다. 이런 행동이 병적인 수준으로 심해지면 많은 활동이 비효율적이고 경직되면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데, 이를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고 부른다. 물론 이런 모습이 성격으로 굳어진 경우도 있다. 그 경우에는 강박성 성격특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피튜니아 더즐리가 강박장애나 강박성 성격특성을 지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 행동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어째서 피튜니아가 그토록 청소에 집착하는지를 추측해 볼 수는 있다.
피튜니아는 해리의 유일한 혈육이다. 하지만 둘은 결코 사이가 좋지 않다. 볼드모트에게 살해된 동생을 대신해서 조카를 키우지만, 그녀는 해리를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 피튜니아가 하나뿐인 조카를 이렇게나 학대했던 이유는 아마 원가족 내 유일한 마법사였던 동생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 소설을 잘 살펴보면, 사실 그녀가 동생과 사이가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편 죽음의 성물에서 해리가 스네이프의 생전 기억을 보는 장면에서 어린 시절의 릴리와 피튜니아가 등장한다. 처음에 두 사람은 조금 까칠한 언니와 장난기가 있는 동생으로 꽤 평범한 자매관계로 묘사된다. 그러나 릴리가 마법을 쓸 때마다 피튜니아는 하지 말라며 짜증을 내고, 동생이 처음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던 날에는 기어이 릴리를 괴물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릴리에게 폭언을 쏟아낸 결정적인 이유는 릴리가 자신이 덤블도어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튜니아는 자신도 마법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호그와트의 교장에게 편지를 썼었다. 결국 그녀가 작중 전반에서 보인 마법 세계에 대한 거부감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능력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에서 나온 반응이었다.
소설에서 묘사된 피튜니아의 속마음은 그 정도이다. 이제 여기서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더해보겠다. 내 추측으로는 피튜니아는 동생과 갈등했던 과거 경험을 통해서 상당한 자기혐오를 느꼈을 것 같다. 첫째는 하나뿐인 동생을 '괴물'이라고 부른 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고, 둘째로는 마법세계에 편입하고 싶었지만 동생과 달리 아무런 마법능력도 가지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거부감이 관련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느낌을 지우고자 물리적인 외부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이를 전문용어로 써보자면 피튜니아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면서 마법세계를 혐오하는 태도를 취했고, 그 욕망과 자신에 대한 불쾌감을 청소라는 외적인 행동으로 '대치'해서 소거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모든 방어기제는 저마다의 용법이 있다. '방어'란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늘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피튜니아가 동생 및 조카와의 관계를 망쳤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의 욕구와 부러움, 시기심, 질투 등을 모두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솔직하게 마법세계에 대한 호의와 호기심을 그대로 표현했다면, 결과적으로 해리가 원래보다는 따뜻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도 그녀처럼 많은 것을 간과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어떤 방어기제를 취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 근원에는 어떤 욕망과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을지 이해해 보자. 더 나아가 그것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어쩌면 망가졌던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죽기 살기로 방어하고자 했던 그 불안감이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