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지키면서 산다는 건 모든 걸 걸지 않으면 안 되는걸까?
대충해도 맛있는 된장찌개처럼 돌보는 일도 연륜이 쌓이면 몸과 마음이 시키는 그대로만 움직이면 아무 일 없는걸까?
돌봄을 위해서는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그 이상의 에너지가 들면 결국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 몸을 먼저 아끼게 되는걸까? 그런데 내 몸을 먼저 아끼면 안 되는걸까? 아니 내 몸을 아끼면서 돌보는 일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어제는 뮤즈의 집에 총 4번 방문을 했다.
뮤즈의 남편의 장기요양등급 신청에 필요한 의사소견서를 받기 위해 동행하느라 한 번, 뮤즈의 돌봄을 위해 또 한 번, 오후에는 남편이 딸이 보내준 김치 택배를 버리겠다고 했다며 다급하게 전화를 해와서 또 내려가야했다. 그 전화가 어떻게건 전화인지 내가 아니까 서둘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양손이 마비인 뮤즈가 발가락으로 집전화 버튼을 눌렀을게 틀림없고, 그 성공률이 매우 낮다는 것을, 그러니까 몇 번인가의 실패를 거듭한 후에 통화가 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집에서 하던 일을 내팽겨치고 한달음에 내려갔다. 또한 제우스는 이미 삶에서의 노동 총량을 다 써버려서 김치를 보낸 택배를 열고 담고 정리하는 일이 생각만 해도 힘에 겹다는 것도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치 포장을 열고 김치통에 김치를 담은 후 김치냉장고에 넣어 드린 후 택배 상자와 비닐 쓰레기를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리고 와서 나는 저녁 메뉴로 준비하던 닭볶음탕을 조리했다.
감자와 당근이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는 동안 나는 또 뮤즈의 저녁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결국 닭볶음을 던 그릇을 들고 가서 뮤즈의 저녁상을 차려드리고 올라오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눈물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는데 끝나지 않는 노동에 지쳐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힘조차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시간이 있다면 단편소설을 쓰지 않을까. 그런데 내겐 그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