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남을 시기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이런 성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온갖 형태의 자기애를 감추려는 위선 때문이다. "
-버나드 맨더빌( 1670~1733, 『꿀벌의 우화』, 1705)
'시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envy' 이다. 그 뜻은 "부러움, 선망"이다. '선망'이란 '누군가를 부러워하여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 일상에서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자연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시기(시기심)'의 뜻을 찾아보면, "남이 잘되는 것을 샘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나온다. 우리 말에서 '시기'는 부정적인 의미의 감정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인용한 글처럼, "살면서 '단 한번도 누군가에 대해 부러워한 적이 없다'거나 '한번도 누군가를 시기한 적이 없다' "라는 말은 아주 뻔뻔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부러움 또는 시기심은 인간이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지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구로부터 비룻되기 때문이다. 시기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주로 자신이 속한 사회적 맥락에서 열등감이 심하고 비교 대상이 되기 쉬운 사람들에게서 시기심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시기심은 열등감의 부정적인 차원, 즉 '열등감 콤플렉스'에 자리잡고 있다. 개인심리학의 거장 아들러에 따르면, 열등감은 어떤 상황에서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의 부족함이나 결점을 인식했을 때 누구나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개인의 완성, 혹은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며, 그것은 곧 자신의 길과 남의 길을 구분하고 오롯히 자신의 길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통찰하였다.
한편 ‘열등감 콤플렉스’란 일반적으로 누구나 열등감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고 하는 자기방어적인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보통의 경우, 열등감을 느낀 개인은 자신의 문제 혹은 부족함을 보상의 노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열등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문제의 상황을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또는 열등감을 지나치게 의식함으로써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좌절감, 무력감, 우울증에 빠지는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열등감 콤플렉스'는 열등감을 수용하지 못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열등감 콤플렉스'는 타인을 향한 부러운 마음을 적대적인 증오의 감정으로 변질시킨다. 즉 상대에 대한 부러운 마음이 오히려 증오심으로 변하여 적대적이 되고, 악의를 갖고 상대의 결점을 들추어내어 비난하거나 험담을 하게 만든다. 만일 누군가를 향한 부러움의 감정에 더하여 미워하고 적대하는 증오심이 함께 하고 있다면, 그 감정이 곧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시기'인 것이다. 주로 증오심은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나 악한 대상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만약 보통 사람,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을 향하여 증오심이 생긴다면, 이는 시기심이며 그 근원은 병적인 열등감 즉 '열등감 콤플렉스'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기심은 병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무의식의 충동이라 하겠다.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하면서 만족을 도외시하는 사람은, 아무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며, 늘 뭔가에 쫓길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정작 그가 추구하던 행복을 몰아 내버리는 결과가 된다. 만족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이 행복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의 노력은 불행을 방지하는데 그친다. 이같이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가면 그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을 것이다. 시기심은 삶을 씁쓸하게 한다." - 롤프 하우블(Rolf Haubl)
결국 타인에 대한 부러움 혹은 시기심을 자신을 개선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남을 깎아내리고 험담함으로써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행복과 불행이라는 대척점으로 갈라선다.
흔히 시기와 동일한 의미로 또는 혼동하여 묶음으로 함께 사용하는 말이 있다. 질투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질투'란,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이라고 나와 있다. 질투의 우리 말 사전적 의미는 두 사람의 친밀관계에서 다른 사람이 그 사이에 개입될 때 시기가 발전하여 질투로 진화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심리학 연구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질투는 '자신이 소유한 것 즉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반응'(Pines, 1992)이며, 인간 관계적 상황에서 '관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불신, 불안, 분노, 걱정 등의 정서가 혼합된 복합적인 감정'이다(Hupka, 1984). 주로 두 사람 사이의 중요한 인간관계나 애정관계에 제 3의 인물이 끼어있을 경우 발생하며, 그로인한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사랑과 우정과 같은 감정적 유대가 깊을수록 더 강하게 느껴진다. 질투는 낮은 자존감이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
질투 역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연적인 감정이지만, 질투를 잘 다루지 못할 경우 관계에 큰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질투는 시기보다 더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질투로 인해 생기는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표출하는 관계적 공격성에 있다. 즉 질투가 부적응적으로 분노로 표현될 경우 공격적 행동으로 표출되어 자신 및 제 3자와 기존의 연인(친구) 사이에 갈등이 유발될 수 있고 불안, 자기비난 등의 심각한 심리적 부적응을 겪을 수 있다. 그 결과 질투는 공격, 살인, 증오, 우울, 자살, 가정폭력 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Pines, 1992).
반면, 긍정적인 측면에서 질투를 건전하게 다룬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써 기존에 소원해진 관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두 사람간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국면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질투에는 '대인관계를 점검하고 유지하거나 향상시킬 수 있게 해주는 순기능'(Power & Dalgleish, 1997)도 있다.
"질투심이 강한 사람의 사랑은 증오심으로 변하기 쉽다. 질투는 남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해치는 독소다. " -알렉상드르 뒤마
질투를 소재로 삼은 세계적인 문호들의 문학 작품이 많다. 질투의 감정은 비극성을 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문학적 도구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세익스피어의 『오델로』, 장 라신의 『바자제』,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등이 있다. 한결같이 질투의 결말은 비극이다. 세 작품의 특징적인 공통점은 주인공들의 지극한 사랑이 낳는 질투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포함한 사랑의 대상까지도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끈다는 데에 있다. 역사가 그러하듯, 그리 길지않은 삶을 살면서 문학작품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말 개인적인 비극의 전조가 아닐 수 없다.
'시기'와 '질투'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감정이다. 어떤 순간에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다. 이것은 부러움이다. "내가 해내지 못하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이룬 저 사람이 부럽지만 나는 그가 밉다"라는 증오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시기심이다. 만약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 그 대상에게 증오감과 함께 분노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면, 이는 부정적 의미에서의 질투다.
나름 정리하자면, 시기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외부의 특정대상을 향한 부러움'이고, 질투는 '관계성의 측면에서 제 3자의 개입으로 인해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을까 봐 자기 내면에서 생기는 불안' 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시기는 자신의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로 삼는 기회, 질투는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을 해치는 독소로 키워 스스로 삶을 고달프고 불행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한 고비나 시기(時機)'를 한자 말로 '위기'(危機)라고 한다. 문자적 의미에서 위기의 상황은 결코 개선 혹은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결과를 떠나서, 그 위기가 지나간 난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오직 준비된 자만이 그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삶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시기와 질투 그 밑바닥에는 어김없이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이 자리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자존감을 '어떻게 향상시키느냐?'라는 '개인의 노력 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그 선택은 오롯이 그대 자신의 몫이다.(2024.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