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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Mar 11. 2021

[내 생애 첫 오페라/졸아도 괜찮아]

<라보엠 / Mi chiamano Mimi>

 영화를 보다 스르륵 잠든 적이 있죠? 지루한 내용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었을 수도 있고요. 길어야 두세 시간짜리 영화도 그러한데 세 시간 이상의 오페라는 어떨까요? 오페라 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는 오페라를 보다가 잠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듯합니다. 물론 저도 수없이 많이 졸아봤고 잠들어봤고 푹 자기도 했죠. 굳이 변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오페라 작품은 평일에는 저녁 8시, 주말에는 오후 3시에 시작해요.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고 공연장까지 꽉 막힌 퇴근길을 지나오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거예요. 또는 집안일을 해놓고 저녁도 거른 채 공연장까지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을 거예요.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객석에 앉았으니 얼마나 아늑하겠어요. 게다가 자막을 보지 않고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죠, 노래는 또 어찌나 감미로운지 들리는 모든 소리가 자장가 같은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나 자신이 취침 모드로 바뀐 것도 모르고 있다가 웅성웅성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을 겁니다. 인터미션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래서 1, 2막보다는 인터미션 후의 3,4막을 더 흥미롭게 보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내용적으로 클라이맥스에 치닫는 지점이기도 하지만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은 시인, 화가, 음악가 세 명의 예술가와 한 명의 철학도가 겪는 보헤미안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해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전국의 공연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크리스마스이브, 가난한 예술가들은 단칸방에 함께 있다가 카페로 나가는데 시인인 로돌포는 원고 작업을 위해 방에 남습니다. 그때 미미라는 한 여자가 촛불을 빌리러 찾아오고 불을 붙이고 나간 미미가 로돌포 방에 열쇠를 떨어뜨렸다며 찾으러 옵니다. 사랑이 시작하려면 어둠이 필요한 걸까요? 때마침 미미의 촛불은 바람에 꺼지고 로돌포는 일부러 자신의 촛불을 꺼버리죠. 미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Mi Chiamano mimi(내 이름은 미미예요)’.    

Si, Mi chiamano Mimi, ma il mio nome e Lucia

La storia mia e breve

A tela o a seta ricamo in casa e fuori

Son tranquilla e lieta ed e mio svago far giglie e rose

Mi piaccion quelle cose che han si dolce malia

che parlano d'amor, di primavere

che parlano di sogni e di chimere

quelle cose che han nome poesia  

Lei m'intende


사람들은 저를 미미라고 부르죠

 그렇지만 제 이름은 루치아예요

제 얘기는 간단해요

집이나 밖에서 비단이나 리넨에 수를 놓는 게 제 일이죠

제 일에 만족하고 행복해요

백합과 장미를 만드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죠

달콤한 매력을 풍기는 것

사랑을 얘기하고 봄을 얘기하는 것

꿈과 환상을 얘기하는 것들을 저는 좋아해요

시(詩)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에요

제 말을 아시겠어요    



 이 멋진 아리아를 우리 식으로 노래하자면 이 노래와 같지 않을까요?



내 이름은 소녀 꿈도 많고 내 이름은 소녀 말도 많지요

거울 앞에 앉아서 물어보며는 어제보다 요만큼 예뻐졌다고

내 이름은 소녀 꽃송이 같이 곱게 피며는 엄마 되겠지

(조애희, 내 이름은 소녀)    



 미미도 자신을 소개하며 로돌포를 향해 소심하게 끼를 부렸을 테고 로돌포 역시 촛불까지 꺼버렸겠다 미미의 손을 덥석 잡으며 ‘그대의 찬 손’이라는 아리아를 부르는데, 이 작품의 유명한 아리아 두 곡이 1막에서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오페라 입문자에게는 엄청난 졸음이 몰려오는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페라 라보엠을 네 번이나 봤습니다만,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졸지 않고 본 것은 마지막 딱 한 번이었어요. 그때는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한 후라 어떻게 하면 제가 오페라를 끝까지 ‘잘’ 관람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묘책은 바로, 공연 전에 잠시 눈을 붙이는 것. 아주 간단하죠? 대부분의 경우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는 관객의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서둘러서 일찍 자리에 앉아 잠깐 눈을 감는 거예요. 만일 시작 시간에 겨우 도착해 객석에 앉자마자 서곡 연주가 시작됐다면 그때라도 잠깐 눈을 붙이는 거죠. 단 몇 분이라도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겁니다. 오페라 서곡은 짧게는 4분 길게는 10분이 넘기도 하는데 그중 잠깐이라도 눈을 쉬게 한다면 공연을 보는 내내 질적으로 훨씬 좋은 관람을 할 수 있어요. 물론 서곡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잠이 밀려와 관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이 오페라를 [내 생애 첫 오페라]로 선택하시는 건 비추입니다. 물론 <라보엠>은 오페라 애호가들의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고, 1막에 나오는 로돌포의 아리아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 손)’, 2막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여성 무제타의 왈츠 ‘quando me’n vo(내가 이 거리를 걸을 때면)’ 등의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초반부터 졸릴 수 있는 위험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15만 원짜리 의자에서 꿀잠을 잘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페라 애호가라면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페라 <라보엠>과 뮤지컬 <렌트>를 연이어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뉴욕의 청춘들이 갖고 있는 많은 고통을 표현한 뮤지컬 <렌트>는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재탄생시킨 작품이거든요. 두 작품을 연이어 감상한다면 같은 내용을 두고 오페라와 뮤지컬의 상이한 표현법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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