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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17. 2023

주변의 반응에 익숙해지는 법

"괜찮을 거야, 걱정 마" 

내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몇 개월간의 검사 기간 동안 걱정을 떨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에는 동의가 되었다. 


어느 누가 '아 내가 이번에는 암에 걸리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의 대부분도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였다.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어느 날은 충분한 위로였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지랄 맞은 날에는 세상 듣기 싫은 말도 그 말이 되었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진심도 와닿지 않았다. 남의 말이니 참 쉽게도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날의 일수는 매우 드물었다. 


내게 전해주던 위로의 말들 대부분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들을 말은 그것뿐이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들을 말의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이 주는 위로는 컸다. 


그런 이들 중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을 전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류의 말은 들을 때마다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단 한 번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지지 않았다. 철석같이 믿어졌다. '그래, 뭐...'와 같은 체념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웠다. 


종이학을 접어 모으듯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아 병에 담으면 내 소원이 이뤄질 것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지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내가 아픈 곳을 밝혀야 하는 순간들이 왔다. 상대가 당황하고 놀라면 나 역시도 낯설어졌다. 그 순간의 어색한 공기를 덮으려 멋쩍은 웃음이 나기도 했다. 


최대한 짧고 빠르게 나의 괜찮음을 설명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싶어 진다. 빨리 무마하고 싶다. 그 순간의 공기를... 여전히 낯설면서도 거북한 순간들이다. 그런 상황 대부분이.


얼마 전, 아이들을 등원길에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어린이집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 손자 반의 담임 선생님이 위암으로 갑자기 그만두셨다고. 젊은 분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도착한 버스에 아이들을 태우면서도 승하차 도움 선생님을 붙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며 물으셨다. 등하원 버스 승하차는 대부분 신속히 이뤄지기 때문에 그런 사담을 나눌 틈이 없는데도. 버스가 떠난 뒤에도 가장 가까이 서있던 나를 붙들고 말을 이어가셨다. 불과 얼마 전에도 만났는데 그렇게 됐다면서...


나는 그날따라 왜 그렇게 그 모습이 꼴사나웠을까. 암환자가 별거라고, 별종도 아닌데 뭘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어떻게든 땅에 붙어살아보려는 사람을 내일 떠날 사람처럼 측은해할 일은 뭔가 싶었다. 


그 할머니의 마음이 동정인지 뭔지도 모르면서 마치 내가 동정받는 것 같았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낸들 알 알인가? 그걸 왜 멀쩡한 당신이 멀쩡하지 않은 우리에게 묻느냐 따지고 싶었다. 


"요즘 암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에요. 제 주변도 그렇고, 저도 기수가 낮긴 해도 암 환자거든요." 놀란 얼굴로 어버버버 하시는 할머니에게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전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그 순간의 내 모습에 낯이 부끄러워 후회가 되었다.


나의 내밀한 마음과 태도도 옳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그럼 나는 암환자에 속하는 측이니, 모든 병을 가벼이 말해도 됐을까?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무게인지 가장 잘 알면서... 똑같이 굴어버린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자격지심은 늘 난데없는 데서 튀어나온다. 그건 상대의 말과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 결핍일 뿐이다. 하지 않은 말을 들었다는 확신마저 심어준다. 모두 내 문제다. 받지도 않은 동정 때문에 나만이 경솔하게 행동했다.




어느 때에는 괜찮고 어느 때에는 거북해하는 날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마음이 참 거울 같아서, 상대방에게 비치는 나로 마음이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한다. 참... 별로다. 중간의 일정한 영역대에서 굳건했으면 좋으련만. 


가뜩이나 내 인생의 초침이 언제 멈출지 몰라 촉박한 기분인데, 그런 것에까지 신경을 두고 싶지 않다. 80세까지는 흐를 줄 알았던 시간이 당장 내년. 41세에 끝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오늘 하루를 잘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집안일을 꾸려나가는 일상만 살기에도 하루가 짧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당장 오늘 저녁을 해 먹이는 일이 더 큰 고민으로 다가온다. 


그저, 눈앞의 시간을 살아간다. 내게는 여전한 할 일과 살아야 할 오늘만이 있다. 속이 상할 때는 상한 대로, 괜찮은 날은 괜찮은 대로 넘기며 내 삶의 낯선 것들과 익숙하게 살아갈 뿐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사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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