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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도 Oct 17. 2023

또 다른 준비, 일기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둘째가 태어나고부터였다. 나는 아이들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내뱉는 예쁜 말과 행동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사진에 담아지지 않았다. 


영상이라는 방법도 있었지만, 업로드해놓는 플랫폼은 언제고 사라질 수 있다 싶었다. 저장 방식도 기기 환경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이 장성하고도 긴 어른의 시간을 보낼 때 언제든지 들춰보기에는 일기가 제격이었다. 집이 불타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일기라고 해서 매일 쓰지는 않는다. 엄마가 남기고 갔다고 해서 펼쳐 읽어보려고 하는데 일기장 권수가 너무 많으면 보는 아이들 입장에서도 힘들 것 같은 생각에서다. 


내 생각에는 2~3권 정도가 딱 적당하다 싶다. 아이들이 둘이니 한두 권씩 나눠가질 수 있는 정도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쓸 말이 매일 생기는 것도 아닌 게 더 정확한 이유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거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펜을 들곤 한다. 아이들만의 언어로 웃긴 말을 하거나 즐거운 하루를 보낸 날에도 꼭 일기를 쓴다. 세상에 이보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있을까 싶을 때도 기록해 놓는 편이다.


그런데 지내다 보면 그마저도 적기 힘들 때가 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데 도저히 피곤해서 일기장을 펼칠 힘이 없는 날. 그런 때는 카톡으로라도 짧게 단어를 적어 남겨둔다. 며칠 후에라도 그 날짜에 맞춰 일기를 적어두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놓치는 일 없이 중요한 것들 대부분은 기록이 가능해진다. 나는 아이들 사진을 내 인스타 비공개 계정에도 올리지 않는 편이다. 올린다 해도 아이들 얼굴이 나오지 않는 뒷모습이 대부분이다. 즉석으로 편리하게 남겨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지만, 느리고 불편해도 나는 늘 '일기'의 기록 방식을 택한다.


무엇보다 '일기'의 장점은 한 템포 느리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펜을 쥔 손은 핸드폰 화면 속에 쓰이는 손가락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한 페이지 분량 안에 담을 내용을 한번 생각하고 시작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쓰기보다 생각하며 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내가 마흔이 되며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있다. 나이가 이렇게 먹어도 여전히 헤매고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스무 살만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40~50대쯤 되면 지혜의 어른이 되고, 60대가 넘기 시작하면 인생의 모든 것에 통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을 막 넘긴 나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온다. 여전히 모르겠는 것 투성이에 이십 대의 그때처럼 누가 좀 알려줬으면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미완성인 내가 몇 십 년 후에 돌아볼 글을 쓰자니 더 신중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내가 써서 나 혼자 보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글을 쓴다는 건 속도나 분량이 아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순도 높은 금을 다듬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매 페이지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 등을 적을 때 특히 더 그렇다. 




또, 신경 쓰는 것이 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다. 마냥 너그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라고 바라는 것 하나가 있다면, 최소한 지루하고 지겨운 엄마는 되지 말자는 것. 


솔직히 지금의 내 인생도 휘청거리면서 누가 누구에게 조언을 하겠는가. 그게 아무리 내 딸이라고 해도 말이다.


'엄마가 살아보니 이 편이 더 좋았더라' 정도의 이야기는 한다. 하지만 '이래야 한다'와 같은 교과서적인 정답은 잘 적지 않게 된다. 의식해서 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


내가 아무리 많은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를 겪었다 할지라도, 그건 아이가 훗날 겪을 경험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정확히 알 수 없으면서 비슷한 예를 들어 마치 그게 엄마의 정답인 것 마냥 따르기는 원치 않는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내 말은 귓등으로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혜를 갖고 스스로 한 분별이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중 하나가 될 테니까. 


그저, 아이들이 아이들 그 자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다 나를 내모는 것 같이 추운 날에도 '엄마라면 내 최후의 품이 되어준다'라고 여겨주길 바란다. 마음껏 와 기대고 울고 성질도 부리면서 또 같이 화해도 하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지겹고 지루하지는 않아, 최소한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 자신은 없지만 그런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일기장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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