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들도 어려운 직장 구하기
어릴 적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겼던 내가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일은 짐짓 운명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이제 겨우 책 1~2권을 내는 정도의 글솜씨를 가진 새내기 작가인 내가, 글쓰기가 운명이라는 둥 필연이라는 둥 얘기하면 볼성 사납지는 않을지 자못 염려가 된다.
작가로서 자리매김의 몫은 앞으로의 나의 노력과 시간이 알려주려니 하며,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는다.
글을 쓰는 일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내가 하는 일들은 대부분 이렇다.
이렇다는 뜻의 의미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는 괜찮다는 뜻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두 권째 내는 자기계발 분야의 작가이니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내게 있어서 이런 예는 많다.
1. 디자인
나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곧잘 한다. 포토샵도, 일러스트레이터도 어느 정도 다룬다. 내가 기획하는 공연과 교육 포스터는 모두 직접 만들었고, 명함, 배너, 상품페이지 정도는 스스로 해결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라고 부르기엔 포트폴리오가 없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아니다.
2. 악기
나는 첼로를 연주할 줄 안다. 혼자 솔로 연주를 할 수도 있고, 오케스트라에서 활약도 오랜 기간 했다. 연주회도 여러 차례 섰다. 하지만, 전공자처럼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진 않다. 음악가라 부를 만한 학력도 없다. 따라서 나는 음악가가 아니다.
3. 업무
나는 경험 유무를 떠나 어떤 일이건 부딪혀 해낼 줄 안다. 어떤 일이건 일종의 프로세스가 있다고 믿기에 이를 잘 대입하기만 하면, 웬만한 일들은 곧잘 처리된다. 사람들은 이런 걸 일머리가 좋다고도 한다. 하지만 내가 한 모든 일들에 전문가냐고 묻는다면 '네'라고 대답하기 망설여진다. 앞서 언급했던 분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전문가를 증빙할 만한 그 어떤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분야들의 전문가가 아니다.
위에 나열한 사례들을 포함하여 숱하게 많은 자질구레한 재능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것들이 때때로 나에게 무기가 되기도 하고 취약점이 되기도 하면서 나의 커리어들을 이끌어 왔다.
이 모든 이야기에 '그래, 나도!'하고 공감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주 무기는 없지만 기가 막힌 일머리를 바탕으로 어떤 역할도 중간 이상은 해내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들을 '올라운드 플레이어'라 부른다. (*지금부터는 이를 줄여 올라플이라 부르겠다)
올라운드 플레이어
[명사] 어느 포지션에 있어도 능숙한 만능선수를 말한다. 활동 폭이 넓어 수비수나 미드필더, 공격수의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며 팀의 공격과 수비에 가담한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구분이 모호하고 강인한 체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근대 축구의 흐름에 적합한 선수의 유형이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올라플은 대부분,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여 그 기술이 주로 활용되는 직무로 구분되는 일련의 스페셜리스트와는 다르다.
'해당 직무에 전문가입니까?'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올라플은 직장, 사회, 가정 등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의미 있는 사람으로 폭넓게 활약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일의 원리를 알고 이를 현재 주어진 업무나 역할에 적용하는 데에 탁월하기 때문이다.
면접 자리에서 절대 금해야 한다는 말, "기회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는 올라플의 진심이기도 하다.
팀이 함께 나아가기 위한 조력자 역할부터 관리, 진행, 운영, 전략, 기획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은, 일을 하기 시작하면 그 진가가 드러나지만 뚜렷한 기술력을 증명할 수 없기에 기회를 얻기까지가 고난이다.
지금의 취업 시장은 직무 중심으로, 해당 직무에서 필요한 직능을 증명해야 하는 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 혹은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직무 중심의 채용이 적합할 수 있다.
워낙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장인 정신으로 무장된 스페셜리스트의 활약이 중요한 분야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직무 별로 각각 다른 인재를 채용할 만큼 자본력이 충분하지도 않을뿐더러, 빠르고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특성상 직무 단위로 채용됐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업무에 동원되는 것을 피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규모와 특성에 따른 차이가 채용 플랫폼, 더 나아가 전반적인 국내의 채용 시스템에 반영되지 않다 보니, 작고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기업들은 채용된 인재와의 오해와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진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들의 특징을 특정 직무로 나뉜 플랫폼에서는 기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몫은 고스란히 기업과 채용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1. 〈다 할 줄 아는데,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잡코리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https://brunch.co.kr/@joan2hye/14
2. 〈나 같은 사람은 필요 없나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이들의 상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