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대리 A씨의 직업을 알려주세요.
말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젓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저는 잡코리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껴요. 엄청나게 많은 직무 중에서 자신 있게 지원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어요. 그래도, 저 경력 5년 차인데 말이에요. 흐흐"
2022년 전격 폐지된다는 문과와 이과는 내가 단발머리 여고생이던 20여년 전에도 존재하던 제도였다.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문과형 인간인가 이과형 인간인가를 가늠하기에, 17살의 나는 지나치게 어렸다.
그 시절의 나는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사랑하는 감성 충만한 소녀였지만, 동시에 딱 떨어지게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A-Z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냉정한 청소년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문과와 이과 중 어디에 더 가까우냐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칼 같이 나눌 수 있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딱 잘라 여기까지를 이 업무 그다음부터는 저 업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제로 대부분의 업무는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경계를 앞에 두고 갈등을 야기한다.
그로 인해, 지금 이 시간에도 회의실에 앉은 이들은 그들의 앞에 놓여진 업무가 과연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책임감 없는 조직 속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점점 더 오버랩되고 유연해지는 업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지금의 기업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거나 탓할 필요가 없다.
물론 모든 회사와 조직이 역할로 인해 혼선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업무가 모듈화 되어 착착 돌아가는 중견 규모 이상의 기업은, 업무의 구분과 이해가 명확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오류없이 해 내는 데에 몰두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부의 2017년도 발표에 의하면 중소기업수는 58만 518개로 전체 기업수의 99.2%에 달하고 근로자 비율도 88%에 육박한다고 하니, 10명 중 8명의 직장인들은 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52시간 근무제가 보편화 되면서 기존 근로자들의 투잡, 쓰리잡이 활성화 되고, 이로 인한 소규모 비즈니스나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으니,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의 요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육아로 중지되었던 경력을 걷어내고도)15년이나 되는 업력을 지닌 나는, 잡코리아의 직무 테이블에서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일 잘하는 5년 차 대리 A 씨의 고민 역시 이 지점 어딘가에 닿아 있을 터였다.
1. 〈다 할 줄 아는데,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잡코리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https://brunch.co.kr/@joan2hye/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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