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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Aug 14. 2022

간결한 안중근

# 김훈 소설 「하얼빈」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실탄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조준선은 지워졌고 총의 반동이 손바닥과 어깨에 걸렸다. 비틀린 조준을 다시 회복하고 나면 표적은 다시 안개 속에 묻혔다. 

-159p, 「하얼빈」


김훈의 인물은 늘 간결했다. 

칼의 노래의 이순신도, 남한산성의 인조도. 

하얼빈의 안중근도 간결하다. 


그의 말은 단문으로 등장하고, 그를 묘사하는 말도 단문으로 적힌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려는 결심을 하는 과정도 확연하다. 

먼 곳에서 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중근은 결심했을 뿐이다. 


1909년의 다른 인물들도 뚜렷하게 묘사된다. 

이토의 신념과 순종의 심상함, 그리고 천주교 조선 대목구장의 현실인식까지 

모두 의심할 데 없이 간결하다. 

그들은 조선이 일본에 넘어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자신들의 하루하루를 적응시킨다. 

그건 절박한 도피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실 순응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메이지와 이토 히로부미는 무력과 말을 혼용한다.

무력에 이어 조선에 도달한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다.  

청나라와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조선을 독립시켰다는 그들은 

대한제국 황실의 순종과 순종의 아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동양의 평화를 얘기하고 문명의 발전을 설파한다. 

그들은 일본을 내세우기보다는 조선을 앞세운다. 


지금 철로가 깔렸으므로 조선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쇠가 이 세상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길이 열리면 이 세계는 그 길 위로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한번 길을 내면, 길이 또 길을 만들어내서 누구도 길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40p, 「하얼빈」


우리의 현재 시점에서 1909년을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리고, 소설 「하얼빈」의 현재 시점에서 그 시대를 판단하는 건 더 쉬운 일이다. 

일본은 조선왕조를 대체할 시스템과 논리를 가지고 들어왔고, 

막무가내식의 수탈보다는 은밀한 장악을 꾀했다. 

「하얼빈」 속의 이토는 뼛속까지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있고, 

순종을 위시한 이 땅의 사람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로) 그 시스템을 따라가려 한다. 


그들이 볼 때, 안중근은 이해불가의 존재이다. 

전쟁에서 패한 청과 러시아의 관료들마저 극진히 대하고 미래를 같이 논하는 이토 히로부미를 뜬금없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건 일상의 수준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토의 사후, 순종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과 이토의 가족에게 사죄하고 일본으로 참배를 떠났을 것이다. 메이지와 이토의 신념을 체화한 이들이라면, 단순히 뭔가를 가장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167p, 「하얼빈」


「하얼빈」에서 묘사된 이토 척살은 활극이 아니다. 

하얼빈 역은 복수의 카타르시스가 넘치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희미한 곳이다. 

신문에 실린 단체사진으로만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안중근은, 

조준할 곳을 조준했음에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 발을 그에게 쏘고 난 후 그 옆의 세 사람에게 다시 총을 발사한다. 그는 이토의 죽음을 확신하지 못하고 체포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추궁은 어렵지 않았지만, 범행 동기의 정치성을 무력화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평화의 문제를 추궁해 들어가면 신문은 토론으로 바뀌었는데, 검찰관이 범죄자와 논쟁을 할 수는 없었다. 

-220p, 「하얼빈」


소설 「하얼빈」은 절반의 분량까지 안중근의 거사를 다루고, 

그다음부터는 이토의 죽음 이후를 다룬다. 


일본의 관료들은 두 달이 넘는 신문 과정에서 이토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이토를 생물학적 죽음보다 이토의 소멸 자체를 바랐던 안중근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은 건, 

안중근의 심리를 흔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중근은 간결한 답으로 그들의 의도를 누른다. 


일본의 사법 시스템은 안중근의 정치범, 사상범으로서의 자격을 없애기 위해, 

살인과 윤리의 문제로 몰아가고, 변호사마저 무지몽매에서 비롯된 우발적 사건으로 결론지으려 하지만, 안중근은 담담하게 자신의 말을 내놓는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이제부터 그 사유를 말하고자 한다. 

-235p, 「하얼빈」


방청객을 퇴정 시키려는 판사 앞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목적은 동양 평화라고 말하며 이토가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으며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라고 진술한다. 이어 그는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며 말을 이어간다. 


안중근은 죽는다. 

그의 유언에 따라, 죽임을 당한 그의 시체를 하얼빈에 안장하려는 가족의 시도는 무력화된다. 

조선인들의 소요를 우려한 일본은 시체 인도를 거부하고 여순감옥 안에 어딘가에 안중근을 묻는다. 

그리고 2022년 아직까지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서 역사 담론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등장인물 편에 설 생각도 없었어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것들, 그러니까 시대, 말, 관념, 야만성 같은 것의 관계, 그것들이 인간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을 그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2017년 남한산성 100쇄 기자간담회


김훈 작가는 이번에도 하나의 풍경을 그렸다. 


「하얼빈」이라는 풍경 속에서 안중근, 이토, 순종 등등 모두는 동등하다. 

작가는 그들의 말을 치우침 없이 옮겨적고, 그 말들이 흘러나왔을 시대를 묘사한다. 


간결한 말들이 모여 간결한 결과를 가져온다면 좋겠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 간결한 각자가 서로 교차하며 부딪힌다. 

힘과 그 반대의 힘이 개입하고, 주저함과 무모함이 더해지면, 

개인의 간결함은 뭉개진다. 


아마, 그래서일 거다. 

작가가 '한덩어리로 죽고 개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역사의 어느 무덤에서 

한 명의 인물을 소환하고 그의 말과 시간을 차근차근 되살리는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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