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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제이 Oct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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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풍 가는 길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본 천상병 시인님의 시 <귀천>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를 되새기면 가장 많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구절 아닐까요? 남는 여운이 주는 감동도 진하지만, 저에게는 특별히 와닿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소풍’

 수업 시간 내내 저는 소풍이라는 단어에 몰입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이 시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소풍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근래 들어서, 저는 가장 즐거운 소풍 길을 걷고 있는 기분에 휩싸입니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 만든 길을 걷고 있어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길이 더 행복한 이유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가 사랑을 주는 만큼 그대로 받아주고, 또한 내가 보여주는 믿음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두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소풍 길을 더 즐겁게 만든 두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자식 사랑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또한, 그 내리사랑이 반복될 때 솜사탕에 설탕을 많이 넣고 오래 굴릴수록 달콤한 솜사탕이 크게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 자녀들도 제 손자 손녀에게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부모가 아이들에게 애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사실, 저도 사춘기 무렵의 안 좋은 기억만을 갖고 살았다고 느껴서인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못 줄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엄마가 되었고, 나름 정말 열심히 육아서적과 동화책을 보며 배우고 연습하며 표현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열 살, 열두 살 두 아들에게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진짜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반복된 연습의 결과랍니다. 하하.

그런데 제 주변의 엄마들은 아무리 연습해도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말합니다. 이런 대화 후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저 또한, 사랑을 제 아들들처럼 많이 받고 자란 건 아닌지. 이 말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제 마음속 어딘가, 분명 엄마가 주신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저는 믿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자식 사랑에 관해 말씀드렸으니, 제 사랑을 무한히 받는 제 아이들을 소개해볼까요. 저의 첫아들, 제 큰아들은 마주 서면 저와 눈이 마주칠 만큼 벌써 키가 자란 지 오래입니다. 자란 키만큼 마음도 커버렸는지, 사춘기가 온 것처럼 방문을 닫고, 종일 게임만 해서 걱정스러운 아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제 아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제 마음을 잘 알아주고, 또한 자신의 마음도 표현을 잘하는 아들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어 제가 화가 나 있으면 -알고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방으로 들어가 5~10분 정도 휴지기를 가진 후 다시 나와 진심으로 미안하다 하고, 자기가 그렇게 한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제가 화난 이유를 설명할 때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어른보다도 성숙함을 느낍니다. 그 마음이 느껴질 때, 아이가 자랑스러운 생각과 함께 엄마로서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종일 업무에 시달려 예민해져 퇴근하는 날이면 먼저 와서 “엄마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보면 저도 자연스럽게 “그래, 오늘은 좀 힘들었네. 엄마 좀 안아줘.”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저를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 마음을 만져주는데, 그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따뜻함이 전해져 어느새 피로감과 예민함이 사르르 녹아 없어집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섬세한 성격임에도 이 아이의 꿈은 축구선수입니다. 스스로 정한 축구선수라는 꿈을 위해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매일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부지런함과 꾸준함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곤 합니다. 그만큼 저는 제 큰아들을 소중히 바라보고 배우면서 제 길을 다져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렇게 큰아들 이야기만 하면 둘째가 섭섭하겠죠? 이제 열 살. 아직 어린 티를 채 못 벗고 있는 둘째는, 형과는 반대로 상대의 감정을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르는 척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물론 형의 가르침으로 잘못은 빠르게 인정하는 편이고 고맙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꺼내긴 하지만 이것 또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답니다. 이러한 둘째는 역시 저를 닮았는지 집돌이 기질이 있는지라, 집에서 혼자서 하는 놀이-레고 또는 그림 그리기, 만들기- 를 즐기기는 편입니다. 움직이는 걸 너무 싫어해서 오동통한 살집을 늘 걱정하면서도 운동은 절대 안 한다는 아이. 어머머 제 아들이 맞네요. 그러나 이런 제 아들도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엄마 뽀뽀’라는 한 마디로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협상 능력 최강자입니다. 무뚝뚝하고 호통만 치는 아빠도 사르르 녹이는 천상 막내죠. 그런 이 녀석도 이렇게 마음을 열기까지 마음 아픈 시절이 있었어요.

 학교 들어가기 직전인 7살이던 그 해, 어느 날부터인가 저의 몸을 때리는 행동이 조금씩 생기더니, 점점 심해져서 제 팔과 다리에 멍이 안 생긴 날이 없을 정도가 되었어요. 그래서 아이와 얘기를 조금씩 나눠보니, 어린이집에서 꽤 오랫동안 친구의 괴롭힘을 당했고 그 행동을 저에게 한 것이더라고요. 아마도 그 스트레스를 저에게 푼 걸까 하는 마음에 집 근처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하여, 아이 심리상담과 동시에 양육자 상담도 함께 받았습니다. 심리상담과 놀이 치료를 병행하며 아이 성향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아이이니 -강아지를 키우는 등-무언가를 돌볼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본인의 성향에도 맞고 안정감도 느끼게 되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키우고 싶다는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해 2월, 우리 집에는 고양이 치즈가 우리 가족의 막내가 되었답니다. 작은 아이가 치즈를 좀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길에서 구조된 고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입니다. 사실 아주 처음엔 저를 대신한 괴롭힘의 대상이었지만, 작고 예쁜 새끼고양이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혼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 미안해하고,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둘째 아이가 고양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면서 예전의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몇 달 후, 목소리는 여전히 크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아이가 되어 ‘발랄한’ 초등학생이 되었답니다.

 지금은 아기 때보다 애정 표현 횟수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저에게 0순위의 두 아들. 저는 제 두 아이가 먼 훗날, 저와 함께 걸었던 소풍 길이 즐거웠다고, 기억할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다르게, 사는 내내 이 소중한 추억을 회상하며 사랑을 받을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제 두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표현하며 소풍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풍 길은 누구와 함께 걸어가고 있나요? 누구와 걸으시든, 지금 걷는 그 길이 먼 훗날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는 길이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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