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다양한 업종의 가게 사장님들이 매장에서 만나는 진상 손님에 대해 하소연하는 글을 자주 본다. 책방이라는 공간 역시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게 되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과 제공하는 서비스 자체가 단순하기에 다른 자영업자들이 겪는 것처럼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드는 그런 손님은 잘 없다. 대부분 내성적이거나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그런 성향 때문에 너무 쉽게 '선넘는다'는 느낌을 주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 책방 주인의 스몰토크와 함께 다정함을 기대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잠깐의 다정함에 친밀함을 느껴 자기 이야기를 너무 길게 쏟아놓는다거나, 나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한다거나 책에 대한 토론을 길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 책방에서 인연이 된 분과 대화를 나누다 그가 선을 넘는다는 느낌과 함께 마음속 셔터가 주루륵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는데 그 분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아 거절했다. 보통은 한번 거절하면 그렇게 끝이 나는데 이 사람은 하루가 멀다하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쯤 책방에 찾아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척하다가 그 제안을 다시 꺼냈다. 부담스러운건 둘째치고 그 대화를 계속 해야하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물리적으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저리 없나 싶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의 선이었을까. 과연 선을 넘는다는 건 뭘까.
선이란 그어놓은 줄, 상대가 그 줄을 넘었다는 것. 오바했다는거. 정도를 지나쳤다는 것. 그 선이란 개인이 지키고 싶은 감정과 인내의 마지노선일테다. 하지만 그 선이 물리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의 눈에도,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드러내 보인 적 없고 그 역시 보지 못했으니 죄를 물을 수도 없다. SF영화에서 나오는 레이저처럼 눈에 보이기라도 해서 닿으면 경고음이 울린다는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 선이 암묵적인 사회적 통념이라고 하기에도 개인마다 다 다르기에 선을 지킨다는 건 어려움을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선을 밟고 밟히며 화내고 싸우고 서로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며 사는게 그저 인생이려니 하고 무시할 수는 없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에 상대의 잘못에 꽂혀 셔터를 확 내리고 자물쇠까지 단단히 채웠겠지만 이젠 셔터를 내리는 속도를 좀 천천히 하면서 완전히 닫히는 걸 막고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본다. 셔터가 내려가는 기회를 포착하여 내 감정의 마지노선들을 관찰해본다. 선을 넘는 이들 덕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선에 대해 알아가는 수업을 받는 셈이다. 위에 언급한 손님에게 밟힌 선을 보며 내가 책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점, 그 시간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허무하게 사라졌을 때 화가난다는 걸 알았다.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그 사람의 태도가 가장 문제였지만 더 빨리 그에게 한계설정을 확실히 하지 않은 내 과실도 발견했다. 이런 결론만 보면 내가 굉장히 침착하게 자아성찰을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부작용이 생겼으니....
예전에는 남이 넘어온 선에 열을 올렸다면 책방을 하고 난 이후로는 타산지석을 너무 열심히 생각했더니 나 역시 어딘가에서는 선을 한참 넘어가는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게 두려워 내심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변했다.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을 줄이게 되고 아는 사람의 공간에 갔을 때도 개인의 시간을 방해할까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식사 시간에 밥 먹고 가라고 하면 배가 고파도 그 공간을 벗어나 혼자 먹곤 했다. 그러다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의 갈등도 없지만 선을 밟고 밟히며 생기는 이해의 과정이나 밀도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반대로 선을 일단 밟으려고 노력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되었다.
서로의 선은 밟아야 선이 어디쯤인지 알 수 있다. 오래 유지하고 싶은 사이라면 선을 넘기도 하고 밟히기도 하면서 상대와 선을 조율하기, 내 선을 잠시 뒤로 빼기, 미리 내 선이 여기 있음을 친절히 알려주기, 서로의 선에 여유분을 좀 남기기, 때로는 상대의 선이 너무 나와있다 싶으면 조금씩 밀어버리기, 절취선을 점선으로 조금씩 바꿔주는 노력이 필요하더라. 이런 노력은 결국 자신의 선의 위치를 알고 컨트롤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결론은 나 역시 더 자주 선을 밟혀야한다는 데 이르렀다. 이런 제길, 선 넘는 자들이여, 내게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