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대구 남구 앞산카페거리라고 불리는 곳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 10평 짜리 공간을 임대했다. 2차선 도로변에 있었고 기존에 카페로 쓰던 곳이어서 인테리어는 크게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단은 작은 북카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들을 소개하는 그림책카페를 하면 되겠다는 아주 1차원적인 생각으로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그림책들을 가지고 와서 채우고 나니 얼추 그림책 카페가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있던 자기만의 방이 3D로 나오고 말았다.
일단 시작할 때 나의 계산법은 그랬다. 내가 하루에 카페에 가면 1-2만원은 그냥 쓰기도 하니까 그 돈을 안 쓰고 내 공간을 구하면 월세 35만원은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에 손님이 한 두 명이라도 오면 월세 정도는 벌 수 있지 않겠냐는 어설픈 어림짐작과 아전인수와도 같은 논리. 어쨌든 계산에 밝지 못해서 빨리 시작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월세가 35만원이었기에 가능했다. 크고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바보같이 시작한 샘 치고는 아직 책방 문이 열려있는 걸 보면 망하지는 않았고 처음 시작했던 공간에서 3년을 보내고 지금은 인근에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해서 7년째 머물고 있다. 한 동네에서 책방으로 버티며 주변에 크고 작은 가게들이 변하는 것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책방을 비롯해 작은 가게들을 보면 월세가 싼 것은 장점이자 함정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시작 할 때 낮은 월세는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초보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고 그만큼 진입 문턱을 낮출 수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출구의 문턱도 낮다는 얘기이다. 나처럼 어설프게 어림짐작 계산을 하는데다 자기 실력에 비해 결과를 낙관적인 사람들은 망할지언정 시작은 잘 하기에 월세가 싼 곳들은 좋은 실험공간이 된다. 하지만 낮은 월세는 나처럼 준비가 어설픈 사람을 불러들이는 만만함이 되기도 하다. 난이도가 낮은 시험 문제랄까. 그래서 월세가 싼 공간들은 그 덕분에 장사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업종이 자주 바뀌기도 한다. 월세 350만원을 내야하는 공간이라면 당연히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만큼 준비가 되어 문턱을 넘을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물론 이 경우에도 급변하는 소비시장과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힘들어 나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월세가 수백만원이라 누가 들어오겠나 싶은 공간에도 턱 하니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걸 보면 나에게는 없는 사업 배포와 프로 정신이 존경스럽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지금도 충분하지 않냐며 상상을 잠재운다.
책방도 엄연히 자영업인데 책 판매로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걸 진작에 알았지만 그럴 때마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가수 김국환의 <타타타> 를 부르며 옷도 있고 책도 많으니 인생 전체로 보면 수지 맞은게 논리적 전개라고 합리화하며, 주먹구구식으로 이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숫자에 서툴다면서 숫자에서 도망치지 맙시다.
절대로 변명이 될 수 없는 무능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일의 기본100 생활의 기본 100》이라는 마쓰우라 야타로의 에세이에서 비수 같은 문장을 만났다. 아니, 아저씨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요. 무능이라뇨. 제가 이래봬도.....
면전에서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느낌이라 당황하며 황급히 변명거리를 찾아보지만 반박할 거리가 궁색하기 그지없다. 이럴 땐 빠른 인정이 답이다. 숫자에 서툴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숫자에 약하길 선택하고 무능을 자처해 왔다는 걸 깨끗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다갈 주제에 내가 직면하고 노력해야할 부분을 외면한 채 돈에 초연한 척 쉬운 문제만 풀고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만족과 타협은 겉모습이 닮아있어 착각하기 쉽다.
요즘은 숫자에 강해지려고 노력중이다. 금융관련 책모임도 만들고 관심없는 척 외면하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알아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바꿔 가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재미있다. 나에게 깔리지 않은 프로그램은 해적판이라도 깔아서 써보려고 한다. 게임은 이기는 놈이 아닌 즐기는 자의 것이다. 내가 플레이하는 레벨에서 돈 때문에 강제로 game over 되지 않기 위해, 싼 월세가 혜택이 아닌 내 발목을 잡는 함정이 되지 않도록 최적의 플레이를 꿈꾸며 오늘도 돈 공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