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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Oct 03. 2021

우연과 필연

01

  모든 것은 우연히 찾아온다. 부모도 우연히 만났고, 자식도 우연히 만났고 친구도, 애인도 모두 우연히 만났다. 그림책도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네다섯 살 즈음, 어린 나를 보며 미소 짓는 엄마가 떠오르고, 엄마 무릎에 앉아 다정하게 그림책을 보던 기억이 난다....라고 쓴다면 참 아름답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기억은 없다. 혹시 나의 편집된 기억인가 싶어 쓰던 글을 잠시 멈추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당신도 덤덤히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하신다. 그렇다고 번듯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그림책을 본 적도 없다. 다닌 적이 없으니까.. 해 질 녘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골목 어귀에서 조무래기들과 놀거나 혼자 개미집을 파헤치고 다닌 기억 밖에 없으니 내가 그림책 제대로 만난 것은 분명 성인이 되어서였다. 그림책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본다면 이것은 마치 어릴 적에도 믿지 않았던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성인이 되어 믿게 되는 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어떤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와 시기는 자기만의 시간을 따른다. 성인이 되어 누군가는 술에, 누군가는 돈에 눈을 뜨듯이 나는 그림책에 눈을 떴다. 그렇다면 음주와 그림책은 전혀 다른 세계일까? 음주가 타락의 세계, 그림책은 순수의 세계인가? 둘 다 멋진 신세계가 될 수도, 아니면 그저 퇴행의 세계, 도피의 세계일 수도 있다.


   그림책을 처음 만난 건 대학을 졸업한 후였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곳이 안국역 근처의 시민단체였는데 첫 직장에서 어리바리하게 일했던 기억도 남아있지만 그보다 퇴근 후 서점으로 달려가 배회한 기억이 몸에 냄새처럼 남아있다. 안국역에서 인사동을 지나 종각, 광화문으로 가는 종로 일대는 대형서점의 버뮤다 삼각지대였다. 종각에 영풍문고와 반디 앤 루니스,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일이 끝나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서점을 서성거렸다. 일을 하려고 출근했다기보다 퇴근하고 서점에 가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보낸 느낌이었다. 마침 솔메이트처럼 지내던 친구 역시 광화문에서 일을 했던 탓에 일이 끝나면 우리는 자주 서점에서 만났다. 다양한 책들이 주는 알 수 없는 자극들로 정체불명의 허기를 채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허기를 채우는 듯한 착각에 취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서점을 드나들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친구를 기다리면서 평소에는 가지 않았던 그림책 코너를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들춰보았던 그림책 한 권. 글이 적어서 서서 2-3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 책을 다 읽은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싸한’ 감정을 느꼈다. 이게 뭐지? 이게 애들이 보는 책이라고?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그 책은 바로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이었다. 나에게 어떤 위로이기도 했고 직면이기도 했던 그림책. 물론 그 책을 온전히 이해한 것은 첫 만남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나 인생의 에움길을 몇 번 더 지난 후였고 그 이해의 과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는 '그림책 방'이 생겼다. 그곳은 현실에서 마음 붙일 방을 가질 수 없었던 나에게 자기만의 방이 되어주었다. 그 후 서점에 갈 때마다,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서점에서 손이 가는 책들은 다 그림책들이었고 내 방에는 그림책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기질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은 어떤 스치는 손길을 위로로 받아들이고 잡기 일수다. 나는 그렇게 그림책의 손을 잡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렇게 그림책을 만난 지도 이제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림책방을 하기에 이르렀다. 크고 작은 책방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지난 2021년 6월, 신문에서 반디 앤 루니스의 부도 소식을 접했다. 못 가본 지도 십 년이 넘었지만 이십 대 한편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지각대장 존>을 처음 만났던 서점이라 그런지 못내 아쉬웠다. 종각의 반디는 이제 없지만 그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그림책의 씨앗이 자라서 난 책방을 하고, 책방에는 <지각대장 존>이 있다. 우연이 몇 번 반복되면 슬쩍 '필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서로 떠나지 못하도록 매듭을 만들곤 한다. 그래서 필연이야말로 자유의지가 강하게 발현된  선택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수없이 펼쳐지는 우연의 장면들 속에서 무엇을 필연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소설 아닐까. 오늘도 필연의 가능성을 품은 많은 우연들을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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