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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를 찍는 시간

by 도우너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은 가까이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보일듯 말듯 거리가 멀어졌을 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릴 적부터 대학졸업할 때까지 교회에 다녔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많은 것들을 그 땐 모르다가 교회를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득 '아하'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있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이 그랬다. 교회에 다닐 적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부분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 일요일에 교회만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을 지키는 방법인 줄 알았다.


안식일. Sabbath day.

한 주간의 마지막 날, 일을 멈추고 쉬는 날, 안식일을 뜻하는 히브리어 '솨바트'는 '일을 중지 하다', '행동을 멈추다', '휴식하다'는 의미를 지닌 다고 한다. 한문으로는 편안할 안(安)에 쉴식(息). '식'息'은 숨을 쉬다. 호흡하다는 뜻이다. 한문을 해석하면 편안하게 숨 쉬는 날이다. 작은 자아에 갇혀 마냥 바쁘게 동동거리며 다닐 때 우리는 자기가 숨쉰다는 것도 모른다. 열심히 사는 거라 착각하기 쉽지만 그저 연결을 잃고 표류하는 것일 뿐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집과 책방을 오가며, 외부 수업들을 다니며 동동거리는 삶에 지쳐가던 어느 날 문득, 깨어있음의 반대말은 분주함이구나 싶었다. 몹시 바쁘게 뛰어다닐 때는 자기가 발 디디고 있는 땅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한다. 발 아래로, 머리 위로 내 몸이 광활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여유가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사랑이 생긴다. 그걸 잊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가 안식일이구나. 교회에 출석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숨쉰다는 걸 오롯이 아는 하루를 가지라는 것. 안식일의 의미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왔다.


헐떡이던 숨소리에 쉼표를 찍고,

부질없는 생각에 쉼표를 찍고,

쉬어가기로 한다.

하늘을 우러러 쉼표를 찍고,

땅을 굽어 쉼표를 찍고,

산과 들 바다를 마주하며 쉼표를 찍는다.


박성룡 <쉼표를 찍으며>



일본 시골마을의 작은 빵집 다루마리의 '빵을 더 잘 만들기 위해, 빵을 만들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철학처럼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잘 사는 법이자 본연의 나를 회복하는 길이다. 요즘은 스스로 분주하다는 느낌이 들때, 내 그림자가 나를 쫓아오지 못하는구나, 내 호흡을 놓치고 있구나.. 내가 올바란 방향에서 이탈했구나하고 판단한다.


이제는 다니는 교회가 없지만 안식일을 만들고 싶을 때, 텅 빈 예배당의 침묵을 만나고 싶을 때 교회에 간다. 대구에서 가까운 경산 하양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무학로 교회가 있다. 교회의 외관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기도실은 교인이 아니더라도 들어갈 수 있어 감사하다.

많은 사람이 모여 찬송 부르며 기도하는 시간 말고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예배당에 앉아서 나의 숨을 인식할 때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과 만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을 숨도 안쉬며 책을 팔다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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