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크라테스 Nov 15. 2021

블라인드 채용법과 분교 논란

고민정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 논란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고민정 의원이 본문에 사용한 '분교'라는 단어가 논란의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이른바 '분교'라는 대학을 나온 사람 중 한 명이라 관심이 가서 고민정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원문으로 읽어 보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분교'라는 단어의 사용보다 고민정 의원의 글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에

논문 교정하는 작업처럼 몇 가지 의문을 제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해를 돕기위해 고민정 의원의 페이스북에서 고민정 의원이 썼던 원문을 보자. 글은 다음과 같다:  




<블라인드채용법>


1) 오늘은 #전태일열사의 51주기.


#블라인드채용법’을 발의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께 글을 썼습니다.


2)“다들 선거로 바쁘실테지만 청년들이 출신학교를 지운 ‘블라인드테스트’를 치를 수 있도록 ‘공공기관 공정채용법 제정안’을 만들었습니다.


저 또한 블라인드테스트로 kbs에 입사한 경험이 있어 법제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습니다.


3)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들은 실시하고 있고 효과도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 늘 불안한 마음입니다. 이 좋은 제도가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법제화하려 합니다.


4)저는 당시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졸업했지만 이 제도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2, 제3의 고민정이 탄생하도록 동료의원님들의 공동발의를 요청드립니다!”


5)꽤나 많은 의원들께서 공동발의에 흔쾌히 동참해주셨고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물론 이 법안은 첫걸음입니다.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민간기업들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을 열겠습니다.


6)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생을 바쳤습니다.


입사 시 대학이름이 아닌 #능력으로_평가받아야 하는 당연한 권리가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7)일할 권리는 50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블라인드채용을 공고히 하고 민간기업으로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들도 준비하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글의 문단마다 번호를 붙여 보았다.  


문단 1): 이 문단에서 내가 발견한 문제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 "전태일 열사"와 "블라인드 채용 법" 사이에 어떤 논리적 연결고리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앞장섰던 인물로 알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 법"이란 공공기관에서 일할 사람을 뽑을 때 학력으로 인한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학력이나 기타 배경들을 '무지의 장막'으로 가려놓고 오직 업무 수행 능력들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에 어떤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있는지 찾기 힘들다. 6,7번 문단을 다룰 때 다시 한번 어디에서 이 논리적 비약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다루어보겠다. 두 번째 문제는 블라인드 채용 법의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자연적 분배 그 자체는 정의로운 것도 정의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정의는 제도가 그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달린 것이다"라고 덧붙였듯이, 자기 수능시험 점수에 맞게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한 것은 그 자체로 정의롭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는 오로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라는 요소만으로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이다. 수학능력 평가의 결과에는 분명히 그날의 컨디션이나 가정형 편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원하는) 대학 입학'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성취하는데 개인의 노력이나 자기관리 역시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겪는 장기 프로젝트를 성실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사실은 충분한 장점으로 여겨질 수 있는 포인트인데,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공공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적절한 판단이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요소로 평가해야 하는가? '오직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고 뽑아야 한다면, 그 능력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그리고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민정 의원의 글에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나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  


문단 2): 이 문단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 또한 블라인드 테스트로 KBS에 입사했다'라는 대목이다. 고민정 의원이 KBS입사 면접을 볼 당시에 블라인드 테스트가 시행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고민정 의원의 입사 이유가 블라인드 테스트에 있다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고민정 의원이 아나운서가 된 데에는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제도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래서 다음 문장이 뒤따라오는 것 같은데, 이는 4번째 문단에 대한 분석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자. 


문단 3): 고민정 의원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기관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고 효과가 입증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어떤 효과가 입증된 것인지에 대한 근거가 나와있지 않다. 만약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공기관 입사자 가운데 지방대나 분교를 졸업한 인원의 수가 증가했다는 결과가 있더라도, 그것이 '오직 블라인드 테스트' 때문인지는 역시나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 때 졸업한 지방 소재 대학의 인원들이 모집 분야에 적합한 인재였을 수도 있고, 당시에 시행된 다른 제도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공공기관 입사 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행해야 할 정당성은 입증되지 않았다.  


문단 4): 내가 생각하는 가장 문제가 많은 대목이다. 고민정 의원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저는 당시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졸업했지만 이 제도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방대를 나온 사람으로써 고민정 의원이 말하는 지방 소재 대학 졸업생의 한국사회 내에서 (특히 구직)의 불이익을 부정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졸업했지만"이라는 문장은, 경희대 수원캠퍼스를 비하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녀의 의도는 물론 그게 아니었겠지만). 경희대 수원캠퍼스가 '분교'인지, '이원화 캠퍼스'인지는 사실 이 문제에서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을 읽는 사람들이  경희대 수원캠퍼스가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 없이는 KBS에 입사할 수 없는 학교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명문대라는 숭고한 대상> (https://brunch.co.kr/@akrates/19) 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학벌 만능주의'에 녹아있는 '명문대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해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내 생각에 고민정 의원이 주장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학벌로 인해 겪게 될 지방 소재 대학의 졸업자들의 공공기관 취업 시 기회의 폭을 넓혀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물론 나는 채용 시 학벌을 장점으로 평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벌 만능주의를 해결하는데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여부가 취업에서 개인이 가진 업무적 능력보다 큰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이미 '좋은 대학은 취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라는 이른바 '명문대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명문대 이데올로기로 인한 편견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이 한 사람을 평가하는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에 대한 직시가 필요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글 참조). 


문단 5): 아직까지 고민정 의원의 주장에 대한 정당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법이 '민간 기업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한다'라는 주장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문단 6): 먼저 나는 고민정 의원의 글이 개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하지 않은채로 임의적으로 모호하게 쓰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요구했던 '당연한 권리'는 오히려 '누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는 게 맞다. '권리'라는 개념의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고 싶다면 개념을 자신이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밝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보니 글을 읽으면서 의아함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입사 시 대학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권리가 아니다. 만약 고민정 의원이 내가 생각하는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했다면,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인간다운 대우와 존중을 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라는 식으로 말했어야 한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게 될 사람을 뽑을 때 '대학'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업무적 능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간성'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볼 것인지는 모두 지원자를 뽑는 기관이나 기업의 선택사항이다. '권리'라는 단어를 일반적인 단어 사용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보니 문단 1에서 지적했던 논리적 비약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단 7): 문단 7 역시 문단 6에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일할 권리'라는 일반적인 단어 사용에 비추어 볼 때 모순으로 보인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대학 졸업 여부 등의 단 한가지의 요소로 인해 모든 일할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정도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특정 정당을 비판하기 위함도 아니고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기 위함도 아니다. 한 대학의 지방 캠퍼스의 졸업자의 한사람으로써 '분교'라는 말로 인해 논쟁이 붙는 것에 관심이 갔고, 논란의 원인을 들여다보니 한 국회의원의 글에서 논리적인 모순이 많이 보여서, 그 국회의원이 원래 의도했던 학벌 만능주의를 없애려는 의도가 제대로 드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부디 이 졸고가 맹목적인 정치적 정쟁에 휩쓸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학벌로 인한 차별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시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진 출처: 나무위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게 노무현 정신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