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18. 2019

지나간 시간은 리셋이 불가능하다

스물넷, 필름 카메라 한 통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숫자다.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필름을 카메라에 넣은 후에라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 덮개를 조심스럽게 열고 필름을 넣은 후 필름의 뒷 꽁무니를 뽑아 원통의 감개에 건다. 자칫 필름이 제대로 감기지 않거나 빛이 들어가게 되면 허옇게 탈색한 사진만 남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 한 다음 뚜껑을 덮으면 윙, 하고 자동으로 감기는 소리가 난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사진을 찍기 위한 세팅이 끝난 뒤에도 함부로 셔터를 누를 수 없다.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없고 잘못 찍혔다는 확신이 든 순간에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다. 수정도 삭제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무한정 찍기에는 필름 값이 너무 비싸다. 찍고 나서 현상, 인화하는데도 돈이 들어간다.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만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심장박동도 덩달아 뛴다. 시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는 발효 음식처럼 필름 카메라 속의 사진도 인화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다. 지난 삶의 시간이 응축된 필름은 얼마간의 시간이 다시 흐른 후에야 비로소 스물네 개의 추억으로 돌아온다. 추억을 사진관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은 그래서 얼마간 애틋했고 얼마간 다급했다. 필름 카메라는 셀렘이자 기다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올봄, 부모님의 이사를 도우면서 박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옛날 사진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오래된 유적지에서 보물을 발굴한 기분이었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흑백사진부터 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이 낡은 박스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무표정하고 어색한 가족사진, 동물원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 사진, 가을 설악을 배경으로 한 단체 사진, 등 한 사람의 과거가 사진 속에서 오롯이 살아 있었다. 박스 속에 차곡차곡 쌓인 사진의 부피가 늘어날수록 세월의 옷도 점차 무거워졌다. 하지만 착실히 부피를 늘려가던 사진은 어느 순간에서 멈췄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시점이었다. 그 이후의 내 역사는 컴퓨터 속에, 혹은 핸드폰 속에 파일의 형태로 모습이 바뀌어 보관 중이다.     


필름 카메라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종이에 기록된 이야기도 사라졌다. 필름도 필요 없고 인화와 현상이라는 복잡한 절차도 필요치 않는 디지털카메라는 참으로 편리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Delete 버튼만 누르면 끝이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찍을 수도 있었다. 아쉬울 것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애틋함과 그리움도 함께 사라졌다.     


한때 DSLR 카메라가 유행했었다. 사진에 문외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DSLR 카메라를 덜컥 장만했다. 고화질의 사진에 대한 기대와 디지털카메라가 갖지 못하는 아우라가 탐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심각한 기계치에다 멋진 사진에 대한 욕망이 사실은 그리 높지 않았는지 카메라는 이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디지털 방식에 이미 익숙해진 손과 머리가 꽤 섬세한 조작을 요하는 DSLR 카메라를 심리적으로 거부했다는 것도 이유였다. 비싼 돈을 주고 산만큼 뽕을 뽑아야 하는데 귀찮고 성가셔서 손이 가지 않았으니 죄책감과 불안감이라는 마음의 부담까지 져야 했다. 결국 비싼 값에 구입한 카메라는 원래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장롱 한 구석에 고이 모셔진 피사체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필름 카메라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감성, 특유의 낡고 따뜻한 느낌 때문에 필름 카메라는 젊은 세대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손만 뻗으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고화질의 선명한 사진을 쉽게 얻을 수 있고, 찍은 사진은 블루투스로 바로 전송할 수 있는 편리한 DSLR 카메라가 넘쳐나는 마당에 굳이 느리고 어려운 필름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상주의 화풍 속의 그림처럼 흐릿한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현대인들에게 개별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저마다 건져 올린 인생 샷으로 인스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에 여념 없는 우리의 모습은 존재 증명을 위한 발버둥이다. 보정한 몸매는 모델 부럽지 않고 다양한 앱의 손길을 거친 미모는 여신급이다. 핸드폰 속에서 웃고 있는 내 얼굴도 현실의 나와는 사뭇 다르다. 기분이 좋다가 이내 쓴웃음이 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에서 흐릿하고 낡은 필름 사진은 두드러지지 않음으로  두드러진다. 피사체를 선명하고 또렷하게 재현하는 디지털 사진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흐릿하지만 감성이 느껴지는 필름 사진은 마음의 온도를 조금 높여준다. 세심하게 피사체를 정한 뒤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면 ‘찰칵’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살 한 조각, 싱그러운 아이들의 미소,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이 필름에 담길 때 찍는 사람의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까지 함께 담긴다. 현실을 정확하게 재현한 사진보다 풍부한 감성이 담긴 사진이 마음에 조금 더 가깝게 닿는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차단속원 다림은 단속 차량을 찍은 필름을 맡기러 <초원사진관>에 온다. 한여름의 산타처럼 불쑥 찾아온 사랑은 다림과 정원에게 행복한 여름을 선물해 주었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흐릿한 사진 속에서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난 정원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일에 쫓겨 숨 막히게 달려야 할 때, 세상이 두렵고 무서울 때 필름 카메라에 눈을 맞추면 마음의 쉼표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나치게 선명하고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서 흐릿한 필름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인생도 필름 카메라와 비슷하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리셋이 불가능하다. 수정이나 삭제도 할 수 없다. 셔터를 누르는 떨리는 순간처럼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이전 07화 팔자에도 없는 특실 타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