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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y 22. 2019

팔자에도 없는 특실 타던 날

내 별명은 금붕어다. 혹시라도 튀어나온 눈을 의심한다거나 어항 속에서 때깔 고운 비늘을 요염하게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순전히 건망증 때문이다. 금붕어의 기억력이 딱 3초라는,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근거를 대며 동생이 붙여준 별명이다.     


초등학교 때는 가방을 빼먹고 신주머니만 덜렁거리며 등교를 한다든지 소풍날 정성스레 싸 주신 담임 선생님 도시락을 택시에 두고 내리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선생님 도시락은 반장 엄마의 몫이었다. 내가 반장이었다는 얘기다. 고급스러운 찬합에 칸칸이 종류가 다른 반찬으로 솜씨를 발휘한 엄마표 도시락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 때 일을 여지껏 기억하고 계신다. 내가 엄마 기분을 상하게 한 날이면 어김없이 과거 기억을 들먹이며 분해하신다. 이 외에도 그동안 갖다 버린 우산을 모으면 비 오는 날 내다 팔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망증을 내 삶의 동반자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들어 정도가 더 심각해졌다. 말을 할 때 명사가 떠오르지 않는 건 어느새 친근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방금 만났던 사람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고 혀끝에서만 맴돈다. 물건을 뒀던 자리가 기억나지 않아 한참을 찾아 헤맨 적도 여러 번이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서 핸드폰이 없어졌다며 식구들을 닥달할때 나를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이라니...  

  

단어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입안에서만 빙빙 도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설단현상(舌端現象·Tip-of-the-tongue Phenomenon)'이라 한다. 설단 현상은 나이가 들면 대부분이 겪는 증상으로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자주 깜박깜박하는 건망증도 나이를 먹으면서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의 ‘열차표 사건’은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기엔 뭔가 찜찜했다    


친정에 가려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늘 하던 대로 앱에서 날짜와 시간을 지정했다. 친정 나들이는 즐거웠고 1박의 짧은 여정이라 체감 시간은 더 빨리 흘렀다. 이튿날 다시 짐을 챙기며 집으로 돌아올 채비를 했다. 건망증이 심하고 매사에 어설픈 나를 못 미더워 하는 친정어머니는 돌아가는 열차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라고 채근하기 시작하셨다. 평소 걱정을 달고 사시는 데다 나이가 드시니 어머니의 잔소리는 해마다 그 강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더해가는 잔소리가 무색하게 영혼 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날도 엄마의 재촉에 무성의하게 ‘알았어요’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역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느긋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열고 타고 갈 열차표를 검색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열차표가 보이지 않았다. 표를 예매할 당시의 생생한 터치감은 그대로인데 표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텅 빈 화면만이 무심하게 껌벅였다.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힌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 구매 상황을 점검했다. 어이없게도 내려오는 날짜와 올라가는 날짜가 동일한 열차표 두 장이 구매 목록에 담겨 있었다. 상황인즉슨 오늘 내가 타고 가야 할 열차표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얘기였다. 어제 날짜가 찍힌 왕복 표는 이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통조림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장 출근은 해야 하는데 열차표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머릿속은 어지러운 책상 서랍처럼 혼란스러워졌다. 급하게 창구로 뛰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티켓을 뽑는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한달음에 뛰어가서 폭풍 검색을 한 뒤 미친 듯이 예약 버튼을 눌렀다. 겨우 좌석에 자리 잡고 앉아 흘린 땀을 식히면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몇 만 원의 돈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진 후였다.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 실수 치고는 대가가 꽤 컸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며 오랜만의 친정 나들이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몇 주 뒤 일이 있어 다시금 친정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지난번 저질렀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었던지라 예약 날짜를 몇 번이나 확인한 후 신중하게 예매 버튼을 눌렀다. 동생과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는 ‘실수’였을 뿐이고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로 축소시켜 호기롭게 대응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제대를 식사를 못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게으른 딸이 오랜만에 주부 모드로 돌아와서 장을 보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서둘러 주방을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시원한 선풍기 바람 밑에 누워 있으니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밀려왔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었다. 잠시 눈을 붙여도 괜찮을 터였다. 고된 노동후의 낮잠은 달콤했지만 돌아가야 할 시간은 곧 다가왔다. 계속 늑장을 부리다가는 지난번과 같은 사달이 날것만 같은 불안에 서둘러 친정집을 나섰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기차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하라는 엄마의 채근에 이번에는 진짜 확실하게 '날짜'를 확인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전철을 타고 이동 중에 남편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제 곧 도착이겠네!’ ‘도착은 무슨 도착이야? 아직 기차를 타지도 않았는데’ ‘그래? 6시 반 도착이라고 하지 않았어?’ ‘도착이 아니고 출발시간이야’라며 통화를 마쳤다. 그런데 불현듯 16:30이라는 숫자가 머릿속 전광판에서 깜박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앱을 켰다. 왜 불행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앱 속에서 16:30이라는 숫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16시를 6시로 착각하고 느긋하게 낮잠까지 자고 나서 집을 나선 후 맞이하는 참혹한 결과였다.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분명 꿈이야.’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기차는 이미 출발 시간을 한참 넘긴 후였다. 한여름 밤의 꿈이었기를 바랐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이번에도 무참히 깨졌다. 더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다시 앱을 열고 기차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특실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팔자에도 없는 특실을 예매했다. 환급 창구에서는 열차 출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는 이유로 30%만 겨우 돌려받을 수 있었다. 반쯤 정신 나간 표정으로 반환 절차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열차 출발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설단 현상’을 나이가 들면서 얻는 세월의 선물이라고 했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단어를 찾기 위해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설명하거나 인터넷 연관 검색어로 단어를 찾은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증거이고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라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와 같은 능력이라고 했다. 즉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설단 현상'은 거꾸로 '메타 인지'가 더욱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끊임없이 설파하고 다닌 것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자신이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노련한 철학자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설단 현상’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닌 듯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이는 삶에 대한 겸허한 태도로 이어진다. 젊었을 때는 세상을 다 아는 듯 객기를 부리고 큰소리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하나 둘 내려놓게 되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 덕분이다. 살면서 크고 중요해 보이는 일도 실은 작고 사소한 것들의 결과물이고 꿈이니 희망이니 거창하게 얘기하지만 하루하루는 정말 소박하게 지나간다는 것도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지식’ 대신 ‘지혜’로 삶을 관조할 수 있게 되고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사물의 참모습과 삶의 이면을 볼 줄 알게 되어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는 여유 또한 나이 듦이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나이만 먹고 정신의 나이는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아직 철이 덜 든 나는 작고 사소한 것을 경시했다. 평소 자식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애정 어린 충고를 잔소리로 무시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 결과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기차표를 잃어버려서 허둥지둥하는 남성이 있었다. 그가 기차표를 애타게 찾는 이유는 돈이 아까워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기차표를 찾아야지만 자신이 어디에 가려고 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류의 사고에 혁명을 가져온 이 시대 최고의 천재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일화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망증이 심했다는 아인슈타인의 일화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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