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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ug 24. 2018

타이어 마모의 흔적

연달아 두 건의 사고를 쳤다.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가 담벼락에 차 뒷부분을 긁어서 움푹 팬 흉측한 상처를 내고 말았다. 내비게이션을 보느라 잠시 방심한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두 번째 사고는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빈자리가 없어서 주차장을 돌고 있는데 마침 딱 한 자리가 비었다. 주차를 위해 얼른 차를 돌렸다. 내 차 뒤로는 미처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차량들이 대기줄을 서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두르느라 미처 백미러를 확인하지 못했고 반대쪽 면마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불과 일주일 상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첫 사고 때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며 서둘러 합리화하고 마음의 불편함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하지만 비슷한 사고를 두 번이나 낸 후에도 ‘급한 마음에’ 실수한 것으로 간단하게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양쪽에 공평하게(?) 상처 입은 자동차는 아침저녁 두 번, 내 마음에도 미세한 기스를 냈다. 나와 함께 늙어가는 차, 긁힌 자국들 사이에 배어 있는 이런저런 생활의 기억이 떠올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이어마저 수명이 다 했는지 이상신호가 왔다. 장거리를 오가는 데 타이어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곳을 수리하는 것 이전에 타이어 교체가 우선이었다.  주말에 결국 카센터를 찾았다.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근처 생활용품점에 들렀더니 지름신이 강림했다. 사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충동구매로 사재기 한 뒤 카센터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타이거 네 개를 모두 교체했다고 했다. 더 많이 상한 타이어 두 개를 먼저 교체한 뒤 나머지 두 개는 다음번에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 경우 타이어의 특정 부분이 심하게 닳아서 모두 교체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이 카센터 직원의 설명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말없이 타이어 네 개의 값을 치르고 나니 예정에 없던 지출로 지갑은 가벼워졌고 마음은 무거워졌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불현듯 “타이어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방금 내가 타이어를 교체한 그곳의 직원도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을까? 네 개의 타이어를 한꺼번에 갈아야 할 만큼 난폭한 운전습관(?)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급출발과 급정지를 밥 먹듯이 하고 사거리나 대로변 외에는 신호를 지키지 않을 때도 있다. 느리게 가는 앞차를 참지 못하고 추월을 위해 가속페달도 수시로 밟는다.   


교사들은 얼굴만 봐도 그 아이에 대해 파악할 수 있고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은 구두가 닳은 부분을 보면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일을 오래 한 결과 자연스럽게 생긴 안목일 것이다. 타이어는 자동차의 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니 타이어의 마모 면을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짐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성격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회적 자아 속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지만 엉뚱한 순간, 뜻하지 않는 곳에서 불쑥 드러난다. 타이어 마모의 흔적 뒤에는 가려져 있던 나의 본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엉뚱한 곳, 엉뚱한 순간에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타이어 자국에 새겨진 것은 물리적인 마모의 흔적만이 아니었다. 생활습관과 삶에 대한 태도, 지나온 생의 궤적까지  한 사람의 인격을 낱낱이 드러내 주었다. 카센터 직원의 눈에 비친 나는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를 밥 먹듯이 하는 성질 삐딱하고 괴팍한 아줌마였다.    


복원사가 그림을 복원하듯 타이어 마모의 흔적도 하나하나 복원할 수 있을까? 무한 질주하듯 달려온 삶이 아닌 시간의 폭과 결을 느끼며 사는 삶으로 말이다.     


‘양쪽에 긁힌 곳은 언제 또 수리하나?’ 가벼워진 지갑을 보며 한숨 짓는 나, 사유의 세계는 감각의 세계 앞에서 언제나 무력하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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