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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29. 2019

밥은 먹었니?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비극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삶의 비극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둘째 아이가 10개월이었던 무렵, 한창 호기심 천국이었던 아이는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 우는 소리에 무심코 뒤를 돌아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반사 신경이 채 발달하지 않았던 아이는 김이 올라오는 밥통에 손을 댄 채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불행은 그렇게 예기치 않은 순간 나를 찾아왔고 수술과 입원이 반복되는 지난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당시 느꼈던 외롭고 참담한 심정은 살면서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한 무력감,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어미로서 자식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과 죄책감, 아이의 고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 등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신음하던 시간들이었다.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 마디에도 가슴은 쿵쾅거렸고 머릿속에서는 비극적 결말이 예정된 소설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 이 말이 언어의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진짜로 가슴이 아팠다.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실제로 느꼈다. 헤진 걸레처럼 너덜거리는 몸과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입원 기간 동안 마주한 환자들의 구구 절절한 사연은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오빠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사고가 나서 발을 절단한 아가씨, 친구 동생에게 장애를 입혔다는 데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오던 어두운 표정의 청년.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꽂아서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 아기, 뜨거운 물을 몸에 그대로 뒤집어쓰는 바람에 전신 화상을 입은 어느 집의 늦둥이 귀한 아들 등. 세상의 온갖 불행은 우리 병실에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저마다의 불행을 애써 감춘 채 말없이 자식을 돌보고 손주를 살피던 가족들의 모습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쉬 잊히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의 연속이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집안을 정리하며 직장으로 향하는 행위는 사소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사소한 일상에게 튕겨져 나온 후에야 비로소 떠나온 자리가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닫게 된다.         


아이의 사고를 겪고 나서도 나는 밥을 먹고 잠을 잤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집안을 정리하고 책을 읽으며 친구에게 온 문자에 답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뎠다. 아침마다 병원으로 출퇴근하셨던 친정어머니의 첫인사는 언제나 ‘밥은 먹었니?’였다. 버석거리는 피부와 퀭한 눈, 짙은 다크 서클은 마음고생을 그대로 드러내었고 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머니 마음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아침마다 끼니 안부를 묻던 엄마의 사소한 말 한마디, 휠체어에 아이를 태우고 병원 뜰을 거닐며 보았던 노란 은행잎과 공중으로 흩어지던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 같은 병실 환자들과 나눠 먹었던 한 조각의 빵과 같은 별 것 아닌 것들에 나는 위로받았다. 아물 것 같지 않았던 상처는 이제 희미한 자국만 남았다.         


고인이 되신 작가 박완서는 생전에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고통을 겪었다. 시간이 흐른 뒤 인터뷰에서 기자가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냐고 물었다. 노 작가는 대답했다.   


“삶의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라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세상의 모든 불행의 집결소 같은 병원에서 나는 인생을 조금 배웠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으면서 삶이란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나한테만은 결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내 삶의 테두리만은 결코 침범받아서는 안 된다는 오만함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평등하지 않은 죽음과, 매일매일의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덕분이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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