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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Nov 01. 2019

손도 잡기전에 키스하자고 덤비면 안 된다

신혼이었을 때 시골에서 몇 년을 살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시골생활에 대해서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시골에서의 생활은 기대했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심심하고 답답한 것은 둘째치고 그들의 ‘배려’가 나에게는 느닷없는 ‘침입’으로 간주되는 상황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의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궁금해하는 이웃집 할머니의 ‘도가 넘는 호기심’, 사흘이 멀다 하고 음식 접시나 채소 보따리를 들이밀며 ‘이웃 간의 정’을 되새겨 주는 옆 집 아줌마, ‘혼자서 뭐 해? 빨리 와. 부침개 했어’ 라며 채근하는 아랫집 여자의 ‘배려’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채 친해지기도 전에, 아니 아직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허락도 없이 경계를 마구 넘나드는 상황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별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적당히 맞장구쳐 주고 때가 되면 일정한 간격으로 웃어 주기도 했지만 마땅히 누려야 하는 정당한 ‘고독’과 ‘자유’가 자꾸만 침해당한다는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막 결혼한 새댁이 이미 결혼생활의 고수였던 그녀들과 나눌 수 있는 공통의 화제가 없다는 것도 그 자리에 있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심신은 지쳐갔다. 결국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초대에 응하지 않았고 섞여 들기를 거부하고 홀수로 남기를 자처한 대가는 마음 둘 데 없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외로움의 지층만 무수히 쌓여가던 젊은 날은 대책 없이 흘러갔고 마침내 시골에서의 생활이 종지부를 찍는 날이 왔다.     


내가 느꼈던 예민함과 불편함의 기저에는 ‘거리의 소멸’ 이 있었다. 배려 차원에서 식사에 초대하고 수시로 남의 집에 드나드는 행동은 타인과 나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던 적절한 거리를 자꾸만 침해했기 때문이다. 관계란 적절한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맺어질 수 있다는 전제를 무시한 행위로 인해 나는 상처 받았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제시한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는 개인이 쾌적함을 느끼기에 적당한 점유 공간을 뜻하는 말로 나라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다. 버스에서 빈자리를 찾을 때 한 자리가 빈 곳보다는 두 자리가 모두 비어있는 곳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자리만 비었을 경우 누군가와 함께 앉아야 하고 이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단 둘이 있게 될 경우에도 민망함과 불편함이 따른다. 갈 곳을 잃은 시선이 방황하다가 안착 한 곳은 결국 스마트 폰이다. 저마다 머리를 박고 애꿎은 스마트폰만 들여다 본다.


출퇴근 무렵의 신도림 역이나 주말의 명동 처럼 사람과 사람이 닿는 일이 일상인 우리와 달리 북유럽의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인구가 워낙 적어서 사람들끼리 부딪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할 때는 상대방과의 거리가 1미터 이내가 되면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스스로 알아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점해서 상대방과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이 우리보다 훨씬 민감한 사람들이다.


수년간 커트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긴 머리와 달리 커트는 조금만 길어도 지저분해지고 손질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야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직진하는 대신 미용실을 향한 나는 피곤하다. 의자에 앉자마자 헤어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맡기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눈치가 빠른 디자이너는 원하는 머리 모양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 끝나면 별 말없이 머리를 자르는 데만 몰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고객배려 차원일 수도 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난감해진다.


일일이 대꾸하려니 피곤하고 입 다물고 있자니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다. 마음에 노란등이 켜진다. 연예인 얘기, 동네 소식에 이어 정치성향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피로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할 수 없이 짧게 대답을 하면 무한 긍정의 의미로 마음대로 해석한 뒤 슬금 슬금 선을 넘어 오기 시작한다. 덩달아 뒷걸음질 치느라 바빠진다.  노란 등은 이제 적색 경고등으로 바뀌었다. 이 쯤에서 안 되겠다 싶어 선을 넘는 질문은 좀 자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은밀한 사생활까지 물어보는 지경에 이르면 결국 입을 굳게 다물고 만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여자에게 손도 잡기 전에 키스부터 하자고 덤벼 드는 격이다.


이후에 내가 다시 방문하게 되는 미용실은 물론 전자이다. 커트 기술이 얼마나 훌륭한가 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 즉 퍼스널 스페이스를 얼마나 존중해 주는가 여부에 따라 그 샵을 계속 다닐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나는 꽤 유별나고 까다로운 고객일지 모른다.    


하지만 퍼스널 스페이스가 확보되지 않는 공간에서는 불편과 불안이 느껴지고 선을 자꾸만 침범하는 사람과는 잠깐의 동거도 힘들다.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감각은 다르다. 무딘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예민한 사람도 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의 공간을 열어 보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저마다 고유한 심리적 공간이 있는 만큼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고 자칫 관계를 그르칠 수 있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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