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이쁘면 된다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입시의 계절이 돌아왔다. 작년 이 맘 때가 문득 떠올랐다. 논술전형을 준비했던 둘째는 수능을 본 후 좌절했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교시 국어과목이 발목을 잡은 탓이었다. 1교시 시험 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다른 과목 시험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결과는 눈물과 한숨만 남았다. 결국 논술을 볼 자격조차 얻지 못한 채 정시라는 망망대해의 바다에 내동댕이 쳐졌다. 아이도 나도 날카로운 못처럼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막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렸다. 한 때 직장 동료였지만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연락을 안 하고 지낸지도 이미 오래된 지인의 톡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둘째의 나이가 같았다. 잘 지내냐는 의례적인 인사가 오간 후 자연스럽게 입시가 화제에 올랐다. 입시의 터널을 통과 중인 학부모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얼마간의 불안과 한숨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한 나는 딸이 수능을 망쳐서 어쩔 수 없이 정시까지 가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내 희망은 무참히 무너졌고 하소연에 대한 지인의 답은 생뚱맞게도 “딸은 이쁘면 된다”였다. 순간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 고마워”라고 하기엔 너무 안 고마웠고, “맞아, 여자는 그래도 얼굴이지” 라며 맞장구를 치게 될 경우 그녀의 올드한 가치관에 동의한 걸 의미하므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사이 연이어 또 다른 톡이 올라왔다. “우리 둘째는 S대 합격했어”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이성을 잃은 모양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족까지 덧붙였다. “자랑하고 싶어서 톡 했어” 이제 머릿속은 화이트 아웃 상태가 되었다.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말을 남기고 서둘러 톡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사이버 공간이라도 한시도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햇살 좋은 여름날, 무방비 상태로 나갔다가 굵은 소나기를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딸은 이쁘면 된다” 는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다. 아무리 애써도 가시는 쉽게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식이 수능을 망쳐서 기분이 엉망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은 고사하고 “딸은 이쁘면 된다” 는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 참 지나서 이미 폐기 처분된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서 속을 뒤집어 놓더니 자기 아이의 합격소식은 그렇게 바쁘게 전하고 싶었을까? SKY 캐슬에 입성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한 마음을 주체 못 하는 것을 이해 못할 만큼 속 좁은 사람은 물론 아니다. 큰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가서 속상해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둘째의 합격 소식은 더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시지옥 대한민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는 1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은 그 지옥을 아주 쉽고 빨리 빠져나온 데다 심지어 천국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던 그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수적인 도시에서 아들만 둘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여전히 20세기를 살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나를 엿먹이기 위해 그런 그런 것은 아니란 건 나도 안다. 내 딸의 미모(?)를 칭찬한 것이 진심임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다만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각 조차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몰이해와 무심한 말로 인해 받을 타인의 상처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다는 것이 그녀의 문제였다.


또 다른 지인은 반대의 경우다. 지인의 딸아이가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오래 사귄 관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등, 미래의 청사진에 대한 얘기가 오고 갔다고 한다. 지인의 딸아이는 학창 시절 뛰어난 수재로 이름을 날렸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재원이었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가 자신의 그림자로만 존재하기를 원했다. 딸아이의 머릿속 서랍 어디에도 살림하고 애만 키우는 모습은 없었지만 남자 친구는 자신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동안 조용히 집안에서 ‘내조’하기만을 바랐다. 결국 그 아이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자 친구와 미련 없이 헤어졌다고 했다. 부모 역시 딸의 결정을 지지해 주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남녀의 역할에 명확한 선을 그었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 하지만 남녀 역할에 대한 시차는 동상이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떨어진 시차에서 각기 다른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지구의 반은 남자다. 이 말은 나머지 반은 여자라는 얘기다. 사이좋게 공존하며 윈윈 해야 하는 세상에서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게 되면 또 다른 반쪽의 인생도 불행을 피해 갈 수 없게 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모래성과 다름없다.


내 인생에서 졸업식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학창 시절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 이맘때 나는 사람 졸업식을 했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졸업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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