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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7. 2019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겨울 유럽을 다녀왔다. 겨울이라 여행지를 선택할 때 날씨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추운 날씨 탓에 모처럼의 여행지에서 호텔방에서만 지내게 되는 끔찍한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따뜻한 남쪽 나라로 행선지를 정했다. 물론 날씨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지만 리스본이 우리의 여행지로 낙점된 데는 날씨가 한몫을 했다. 매번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 했었는데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리스본 도착 후, 오래된 열쇠로 굳게 닫힌 철문을 따고 올라갔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유럽을 여행할 때면 두꺼운 문 속의 보이지 않는 세상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아갈까? 사람이 살고는 있는 걸까?  방은 몇 개고 집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재크의 콩나무처럼 호기심은 쑥쑥 자라났지만 남의 집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으므로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은 미지수 엑스 상태로 가슴에 남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숙소로 정한 에어 비 앤 비가 그동안의 궁금증을 죄다 해결해 주었다. 실제로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안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된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기 전, 조금은 이른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것이었다. 호스트의 배려로 다양하게 준비된 캡슐 커피를 신중하게 고른 뒤 머신에 집어넣는다. 잠시 후면 뜨겁고 진한 에스프레소가 뽀얗고 예쁜 도자기 컵에 조금씩 차 오르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여행자의 기분에 젖어들었다. 크레마 가득한 진한 커피 한 잔 을 시작으로 리스본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희붐한 새벽,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넉넉함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인지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하얀 나무 창을 밀면 바로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건물 2층이 우리의 숙소였다. 숙소 바로 옆에는 리스본 대성당이 있어서 맑은 성당의 종소리를 매일 아침 듣는 귀 호사도 누렸다. 리스본의 상징 28번 노란 트램이 지나가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멀리서 전차 특유의 미세한 진동과 자잘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쏜살같이 창가로 뛰어갔다. 어린아이마냥 창문으로 빼곰히 고개를 내밀고 트램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토록 낯설었고 그 낯섦이 트램 소리 하나에도 흥분하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미세 먼지 때문에 제대로 숨 한 번 못 쉬고 여러 날을 살아온 탓에 따뜻하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으로 여겨졌다. 가슴을 크게 부풀려서 신선한 공기를 매일 아침 폐 속 가득 집어넣었다. 공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무한리필을 허락했었는데 이제 한국에서는 그 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슬픈 현실이 떠올라 잠시 우울해졌다.
     
본격적인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 가게 오픈을 위해 물건을 배치하고 청소를 시작하는 상점 주인, 나처럼 한 잔 커피를 들고 막 기지개를 키는 게으른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내가 막 도착한 낯설고 호기심 천국이었던 여행지는 누군가에는 익숙한 삶의 터전이자 평범하기 그지없는 노동의 현장에 지나지 않았다.
     
리스본에서 5일을 머무는 동안 유심히 봤던 다양한 풍경 가운데 한 장의 사진으로 선명하게 찍힌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군밤 장수다. 우리나라에서 겨울이면 파는 바로 그 군밤 이다. 숙소 창문으로 군밤 장수를 처음 발견한 아침 이래로 눈뜨면 군밤장수부터 살피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가  되었다. 군밤을 굽는 장치는 우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준비를 마치고 밤을 굽기 시작하면 주변은 온통 검은 연기로 자욱해진다. 포르투갈 거리를 걷다가 자욱한 안개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장면이 눈에 들어 왔을때 바로 군밤 장수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낡은 잠바에 털모자를 쓴 중년의 아저씨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채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군밤 수레 주위를 분주하게 오가며 장사 준비를 마치면 수레를 고정시키고 불을 지폈다. 자루에는 군밤이 가득했다.  뒷 쪽 가게 주인과 아침 인사도 나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었다. 일상의 삶은 어디서나 비슷했고 여행자의 눈에 비친 군밤장수 역시 무한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며 삶의 시간 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 무모의 시간을 견디면서 밤을 굽고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리라. 뭉클했다.  
     
아침마다 가게 문을 열고 야채와 과일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청과물 가게 아줌마, 식욕을 자극하는 막 구운 빵을 바구니에 담아내는 빵 집 아저씨, 따끈한 군밤을 만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거리 한 모퉁이에서 장사 준비를 하는 중년의 군밤 장수는 친근한 한국의 우리 이웃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는 모습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무의미의 반복이 의미를 만들어 내고 무모의 시간을 버티는 동안 삶의 근육이 단단하게 차 오르는 것은 리스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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