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Need the Ancient Greek Vocabulary
사랑은 우리가 최고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자, 우리 모두 열망하는 것, 우리를 근본적으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고 믿는 것이지만, 동시에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흔히 그래야 한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사랑을 경험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스스로 완전히 정상인지 아닌지 불안해한다.
사랑에 관해서 우리 사회는 미묘한 방식으로 몹시 규범적이다. 사회는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성적인 관계 안에 있어야 하고, 나아가 그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즉, 우리는 파트너가 옆에 있으면 끊임없이 흥분해야 하고 파트너가 부재하면 늘 보고 싶어 해야 하며, 그들을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키스를 받고 싶어 해야 한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거의 매일 섹스를 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평생 낭만적인 황홀경의 대본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실천적으로는 몹시 징벌적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이와 같이 정의해버리고 정상성에 대한 개념 역시 이에 맞게 정해버린다면, 우리 대부분은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거나 제정신이거나 정상적인 사람의 자격이 없다고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며)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관계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랑이라는 사이비종교를 만들어냈다.
이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일찍이 사랑에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각자 미덕과 적절한 때가 있고, 좋은 사회란 서로 다른 감정 상태에 정확한 어휘를 붙여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당성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연인관계의 시작단계에서 종종 경험하는 강력한 육체적인 감정에 ‘에로스(ἔρως)’라는 단어를 붙였다. 그러나 관계가 일 년 정도 지나면 십중팔구 이 성적인 강렬함이 시들어가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반드시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의 감정은 흔히 ‘우정’이라고 번역하는 ‘필리아(φιλία)’에 포함되는 또 다른 사랑으로 진화할 수 있다. 이때 그리스어 단어가 영어 단어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충실하고 감동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필리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 수도 있을 정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젊었을 때 에로스에서 벗어나, 관계가 – 특히 결혼 관계 – 필리아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어휘는 실현할 수 있는 결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우리의 이해에 중요한 뉘앙스를 가미한다. 심지어 우리에게 주어진 일방적인 어휘가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스인들은 사랑에 관한 세 번째 단어도 가졌는데, 바로 ‘아가페((ἀγάπη)’이다. 이 단어는 자선적인 사랑으로 가장 잘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다소 그릇된 행동을 한 사람이나 인격적 결함을 향해 슬픔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동정심을 느낄 때의 감정이다. 신이 인간을 향해 느끼는 감정이나 관객들이 연극의 비극적 인물을 향해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강점보다는 약점과 관련해 경험하는 사랑이다. 즉, 사랑은 미덕에 대한 존경이기도 하지만 우리 안의 나약하고 불완전한 것을 향한 동정심과 너그러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감정이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이 세 단어를 손에 쥐면 실제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대폭 확장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맹목적인 단일암석에 어떤 구성요소가 있는지 현명하게 나눌 줄 알았다.
그들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는 우리가 현재 지닌 어휘를 통해 인식하는 것보다 우리 삶에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