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That Sunday Evening Feeling?
보통 오후 5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찾아오는 기분으로 6시에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 특히 날씨가 바뀌면서 낮의 마지막 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 찾아온다.
일요일 저녁의 기분은 흔히 일과, 즐거운 휴식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지금 벌어지는 일의 복잡성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우리 기분을 끌어내리는 것은 단지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게 맞지 않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실제로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말이다.
우리 내면에는 ‘진정한 일하는 자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한다. 이 자아는 현실이라는 원료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싶은 성향과 능력의 조합이다. 우리는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직업에 기울이기를 원하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서비스와 상품에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에게 들어맞는 직업이라고 여기는 것이고, 그런 직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근본적이고 강력한 요구이다. 우리는 친밀한 동반자를 찾는 데 실패했을 때만큼이나 운명적인 직업을 찾는 데 실패했을 때 좌절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맞지 않다고 느끼고, 아직 진정한 천직을 찾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사소한 불편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핵심적이고 실존적인 위기가 될 수 있다.
보통 평일에는 ‘진정한 일하는 자아’의 끈질긴 부름을 어찌어찌 막아낸다. 너무 바쁘고 또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일요일 저녁이면 그 부름은 뚜렷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은 유령처럼 두 세계 사이에 매달려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해결책을 요구하며 우리 의식의 문을 쾅쾅 두드린다. 우리의 일부분은 남은 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슬퍼하거나 공황에 빠진다. 일요일 저녁의 고통은 조금 더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흔들어대는 우리의 양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일요일 저녁에도 역사가 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최근까지 우리 대부분은 진정한 일하는 자아가 노동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조차 제대로 던질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일했고 최소한의 수입에도 감사했다. 그러나 더 이상 줄어든 기대치를 고수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제 상업의 엔진에 우리 재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미 그렇게 한 사람들의 예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더는 불행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가 여전히 불행하다면 특히 굴욕감이라는 감정이 더해진다는 것을 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우리 목적에 부합하는 구조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면서도 진정한 행동방침에 대해서는 화가 날 정도로 애매모호한 것이야말로 일하는 자아의 본성이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하게 확신하면서 동시에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는 혼란을 느낄 수 있다.
해결책은 참을성과 체계, 그리고 꾸준한 의지다. 우리는 탐정이나 부서진 항아리 조각을 다시 맞추는 고고학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불안한 마음을 술 한 잔과 영화 한 편이면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일요일의 우울’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고 지위와 돈이라는 단기적인 필요 때문에 묻혀 있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혼란스럽지만 핵심적인 탐색의 한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다시 말해 일요일 저녁의 감정을 단지 일요일 저녁만의 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 감정을 삶의 한가운데에 놓고, 일주일 내내, 몇 달 동안, 어쩌면 몇 년 간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우리 자신과 친구와 멘토와 전문가들과 대화를 트는 촉매로 삼아야 한다. 일요일 저녁마다 슬픔과 불안이 찾아오면 이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이틀간의 여가가 끝나서 괴로운 게 아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라는 유용한 경종이다.
번역: 이주혜 클래스 리더
편집: 인생학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