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선배였던 J. 그는 매번 나를 '세연님'이라고 불렀다. 기사가 막힐 땐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 라며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다듬어진 기사가 나오면 물개 박수를 쳐줬다. 모든 대화는 존댓말로 이루어졌다. 학교 같은 분위기가 좋다고 했던 J 선배였다.
혼낼 때는 정확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게 그의 방법이었다. '세연님, 이 기사에서 지금 오타를 3개 찾았는데요.' 이런 말들이 오갔다. 그런데도 '정신 안 차리냐', '똑바로 안 하냐' 등 감정 섞인 표현이나 평가는 없었다. 더 어려운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한다. '사실'과 '평가'를 구분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믿어주는 만큼 잘하고 싶었다. 덕분에 거의 매일 기사를 썼다. 혹시 나 때문에 '역시 혼내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언론사 인턴인데도, SNS 관리 대신 실무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영화 Law, Talk!>이 가장 애착이 간다. 일주일에 한 번, 꽤 공들인 글을 썼다. 쓰는 것 자체도 즐거웠지만, 반전이 있었다. 나는 그게 원래 있던 코너로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 입사 직전, J 선배가 급하게 만든 코너였다고 한다. 내가 해당 코너를 잘 쓸 것 같았다고 했다. 미리 내가 브런치에 써둔 글을 읽어보고, 고민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의 성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열심히 기사를 썼지만, 그다지 읽히지 않았다. 뚜렷한 성장세도 보이지 않아 막막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싶었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뭘 해야 할지는 잘 몰랐다. 우리가 실력 있는 매체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졌다.
입사한 뒤 3달 정도 되는 기간에 벌어진 이야기다. 이때는 한창 '네이버 제휴에 신청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한 번 떨어지면 다음 기회에는 지원할 기회가 없다. 회의를 계속했다. 주말에도 출근했다. 하지만 결론은 '다음번에'였다. 생각보다 탈락의 비율이 높았고, 우리가 허들을 넘을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새로운 편집장이 왔다. 폭풍전야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