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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Dec 14. 2019

(4) 돌멩이와 칼

폭풍이 몰아쳤다. 새로 온 E 편집장은 전방위로 움직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게'가 그의 개선 방향이었다. 기사 작성 원칙과 발제, 편집 과정 등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그 추진력과 영향력은 헌법 공표와 같았다. 로톡뉴스 제헌절이 이어졌다. 대형 언론사에서 10년 이상 일한 그에게 보였을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적응은 힘겨웠다. 업무강도는 배로 늘었고, 기사가 되지 않으면 퇴근은 힘들었다. "우리 기사가 곧 우리 얼굴"이라는 E 편집장은 그 말대로 기사에 엄격했다. 형편없이 써진 초고를 끝까지 수정하는 편집장의 타자 소리는 총성 같았다. '타닥! 타닥!' 나는 피격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 같던 어느 날. 나보다 앞서 나가던 J 선배가 갑자기 선포했다. "퇴사합니다." 다른 일을 하게 됐다는 이유였다.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다만 J 선배는 평소 "야마(기사의 중심)가 싫다"고 했다. "야마를 잡아놓고, 거기에 맞게 쓴 글은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반면 E 편집장은 '야마 먼저'였다. 기사를 쓰기 전이면 늘 물어보곤 한다. "야마가 뭐예요?" 야마가 잡히지 않으면 기사는 쓰지 않기로 했다. 킬(kill)이다. '기사가 아니라 죽은 글'이라는 취지다. E 편집장의 독특한 행동은 아니고, 언론사 자체의 오랜 관행이다. '선명한 주제의식 없이 사실 나열만 하는 게 무슨 기사냐'는 논리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대충돌 앞에서 고래 사이에 낀 새우가 나였다. '기사는 대체 무엇이냐!'는 해묵은 질문 앞에서 답을 내릴 만한 경험과 지식 모두 부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기자가 '네 말도 맞고, 너의 말도 맞다'고 하는 건 비겁하다. 기자는 공자가 아니다. 말을 할 때는 쓸모 있는 말을 해야 한다.


야마는 기자의 문제의식이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도려내는 칼과 같다. 그래서 E 편집장은 "기자는 단도와 장도, 도끼를 모두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팩트를 중요도 순으로 전달하는 스트레이트는 단도(짧은 칼)다. 기자가 전문가를 거쳐서 분석하고, 자문을 받아 쓰는 건 장도(긴 칼)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의 방대한 데이터를 받고, 의미를 뽑아내 쓴 기사는 묵직하게 찍어 내린 도끼다. 


동시에 "찌를 때도, 후벼파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E 편집장의 당부였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그만큼만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자의 역량이자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다. 어렵지만, 기자가 해당 분야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칼을 갈고닦는 이유다.


그런데 기자가 칼을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기자 자체가 '이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직업이니, 무기가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 결국 눈에 보이는 돌멩이라도 집어던질 텐데, 오히려 이게 걱정이다. 표적도, 과녁도 없으면 엉뚱한 개구리가 돌에 맞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야마를 잡는다. 칼을 잘 다루고 싶다. 암덩어리를 도려내는 수술실의 의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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