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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Jan 19. 2020

(5) 오래 버티고 싶어서

면접관들 앞에서 위축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해야 할 말 '따박따박' 다 하는 경우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는 스킬(skill·기술)이 핵심이다. 새로 온 편집기자가 그런 스킬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면접 시작부터 불을 뿜었다. 기존 기사의 제목을 다시 지어보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수정하겠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타당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로는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님들은) 왜 이곳에 다니고 계신 건가요?"라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결과는 합격. 그렇게 들어온 편집기자는 '열일'에 나섰다. 제목을 정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데스크와 함께 기사의 방향을 가다듬을 때가 많았다. 그 배경에는 "편집기자가 첫 번째 독자"라는 모두의 굳건한 믿음이 있다.


솔직히 불만일 때도 없지 않았다. 의견 충돌이 생길 때다. 초고를 가져가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듣는다. 수정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보호본능이 꿈틀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엔 내가 맞는 것 같다. 특히 직접 취재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저 사람이 몰라서 저러는 건데'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다행히 그럴 때 떠올리는 다짐이 있다. 논리보다도 존중에 무게를 두는 방향의 다짐이다. '편집기자가 모르면 독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랬다면 내가 잘못 썼을 가능성이 높다. 독자 중심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실제로도 충돌이 생긴 경우 전적은 나의 패배일 때가 훨씬 많다. 수정한 뒤 스스로 보기에도, 독자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집 덜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쉽지 않아서 문제다. 그래도 존경하는 기자들은 "데스크 말을 존중하는 기자의 수명이 길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오래 버티고 싶다. 면접 당시 편집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 역시 간단했다.


"여기가 잘 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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