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뿌듯한 기사가 뭐냐'는 질문에 답했던 기사가 있다. '감자탕 사건'으로 알려진 강간 무죄 기사가 가장 뿌듯했다. '감자탕'이라는 이름은 법원 때문에 붙었다. 1심 재판부는 감자탕집에서 접시에 고기 덜어준 '호의'를 성관계의 '동의'라고 해석했고, 나아가 무죄를 선고했다. 당연히 반발을 샀다.
전국민적 공분이었다. 공론장이 만들어지는 게 눈앞에서 느껴졌다. SNS에서, 라디오에서 "잘못된 판결"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오피니언 리더들도 저마다 한 목소리를 냈다. 하나의 기사에서 시작된 흐름은, 꽤나 거대했다. 조금. 아니, 많이 뿌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오히려 '섬뜩한 기사' 쪽에 가까워졌다. 8개월 만에 나온 2심에서 무죄 판결이 깨지면서다. 징역 2년, 실형이었다. 이때 피고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갔다. 재판장이 주문을 읊을 때는 눈물이 맺혔고, 간단한 인적사항 확인에도 횡설수설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눈앞에서 당사자가 구속되는 충격은 나에게도 컸다. "펜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무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취재한 게 맞을까, 빠트린 내용은 없었을까, 오해를 만들어 내진 않았을까.' 이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심 판사가 법복을 벗은 사실 역시 이런 고민에 무게를 더했다.
나에게 "이 사건을 다 이해했느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그렇지 않다. 사건 현장에는 당연히 없었고, 수사 과정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도 '내 자리'는 어디까지나 방청석이었다. 직업상 관찰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거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충격은, 뿌듯함보다는 공포였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가 있다. 보통 7명에서 9명의 배심원이 하루 종일 법정을 지킨다. 유, 무죄 그리고 형량에 대한 의견을 내기 위해서다. 이들이 결정하는 형량은 전문 법관보다 높을까. 의외로 그렇지 않다. 통계가 그렇게 말해준다. 칼이 쥐어지면, 사람은 신중해진다고.
나는 그렇게 하고 있을까. 그저 다짐한다. 칼을 들 땐 장도와 단도 중 맞는 걸 고르기를 바란다. 찌를 땐 필요한 부분만 깨끗이 도려내기를, 또 바란다. 만약 감이 무뎌진다면 그땐 펜을 놓기를, 다시 바란다.
해당 기사(2심) : https://news.lawtalk.co.kr/judgement/2534
해당 기사(1심) : https://news.lawtalk.co.kr/judgement/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