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기자분 좀 예민하시네요. 예민해서 기사를 어떻게 쓰나요"
판결문 기사에 달린 의견이었다. 글쓴이는 나에게 "예민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남기자에게 냉철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보다"라고 밝혔다. 남기자인 내가 쓴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취지로 읽혔다. 어째서일까. 답은 첫 문장에 있었다. "젊은 여자가 그럴 수도 있지."
말 그대로 '젊은 여자'인 20대 여성 피고인이 "징역 2년의 실형으로 처벌받았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글쓴이 주장대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단 혐의부터 살인미수였기 때문이다. 판결문엔 이렇게 적혔다. "치밀한 계획범죄로 자칫 중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당연히 동료들은 "말도 안 되는 의견"이라며 대신 분노해줬다. 하지만 어쩐지 글을 읽고도 속상하지 않았다. 글쓴이가 '전략적으로 말하고 있다'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댓글에서 성별만 뒤집으면 "여자는 예민하다. 젊은 남자는 그럴 수 있다"가 되는데, 실제 이런 발언과 상황은 비일비재하고, 여성을 괴롭게 만든다.
반면 "남자는 예민하다. 젊은 여자는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일단 '성립'부터 하지 못한다. 이런 발언을 진지하게 들어보거나, 이를 악 물고 해명해야 했던 남성은 (나를 포함하여) 없을 것이다. 들었다고 하더라도, 젠더 권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여유'에서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남성이 이제껏 누려온 특혜를 깨닫고, 나아가 반성을 요구한다는 취지로 읽혔다. 남성으로서 책임을 느낄 뿐이었다.
사실 기사의 초고는 훨씬 피고인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취지로 쓰였다. 판결문엔 이런 말도 있었다. "피해자(전 남자친구)는 피고인과 헤어진 뒤 딸을 1년간 3번 정도 만나게 해주는 데 그쳤다", "(피고인은) 과거 피해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당연히 편집장은 혼을 냈다. "가해자(피고인)에게 유리하게 기사를 썼다"며 "범죄 기사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건 금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기사를 수정하면서도 찝찝했다.
강력범죄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남성이다. 그런데도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로 몰려 "억울하다"고들 한다. 여성이 '잠재적 피해자'인 건 당연한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성범죄인 데도, "남자가 젊으면 그럴 수 있고, 여자가 예민 반응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렇게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상황에서 언론의 균형은 어디에 찍혀야 할까. 단순히 '정가운데'로 만족해야 할까. 세상을 비추는 기자의 과제는 무엇이며, 역할과 의무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내가 봐도, 남기자라 냉철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