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님이 그냥 '듣고만' 오셨으니까 그렇죠."
끙끙대며 인터뷰 원고를 붙들고 있던 통에 편집장이 꾸짖었다. 내가 보기에도 글이 지루했다. 너무 당연한 말, 너무 많이 들었던 말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편집장은 "질문 대신 듣고만 왔기 때문"이라고 원인 진단했다. 그 말대로 야심 찼던 첫 인터뷰는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이 미약했다.
중요한 인터뷰였다. 배드파더스 무죄 선고를 이끈 12명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을 만났었고, 해당 선고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 관련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사회에 미칠 영향이 거대했기 때문에 뉴스 가치가 엄청났다.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변호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취재해야 하는 순간을 놓친 대가였다. 사전 질문지에 쏟은 정성만큼 현장에서 열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들려주는 대로 받아오면 기사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한 인터뷰는 언론에게나, 인터뷰이에게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실상은 '힘겨루기'에 가까웠다. 인터뷰이는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때가 많았고, 인터뷰를 홍보에 활용하고자 할 때가 많았다. 홍보와 기사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면 기자가 취재를 해야 했다. 다소 민감한 질문과 내밀한 질문도 물어볼 수밖에 없는,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자리가 실제 인터뷰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날 나는 지나치게 편안했다. 추가 질문도 거의 하지 않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기사도 삼삼했다. 인터뷰이의 좋은 답변 덕분에 기사는 잘 나갔지만, 기자의 부족한 실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장면이 필요했다. 12명의 변호인단이 모인 단톡방에서는 매일 불이 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다 기발한 변론이 나왔는데 이게 재판에서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 반대했던 변론이었고, 불을 뿜으며 싸운 덕분에 나올 수 있었던 변론이었고.
아쉽다. 언제가 되면, 필요한 질문이 제때 생각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