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욕을 먹는다. '기레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가끔 "사명감이 대단한 것 같다"는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십중팔구 이쪽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경우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기웃거린 적이 있거나, 기자 친구가 있을 때가 많았다. "빡빡한 업무 강도에 비해 대가가 적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오해도 있다. 특히 '사명감'에 대해 "타고난 정의로운 성향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몸이 배배 꼬인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솔직하게 말하면 타고나지 않았고, 그다지 정의롭지도 않다. 그보다는 "이 일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대한 현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1월 '배드파더스' 재판은 15시간 동안 진행됐다. 자정이 넘는 시간에도 방청석은 기자들로 가득 찼다. 예상을 뒤엎고 무죄가 나왔을 땐 모두가 환호했다. 법정 밖에서 즉석 기자 회견장이 뚝딱 만들어졌고, 변호인단은 "축배를 들러 가자"고 외쳤다. 눈빛만 봐도 서로 '그동안 고생많았다'고 하고 있었다.
없던 사명감도 생기게 만드는 게 이런 현장이었다. 사건 관계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사를 대충 쓸 수 없게 만드는, 재미있고 정확하게 안 쓰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그런 거대한 느낌이 있다. 이날 50 페이지가 넘는 속기록을 1페이지 분량의 기사로 정리하는 건 그 자체로 뿌듯했다.
성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자 측과 통화할 때도 비슷하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수화기 너머 상대는 울먹일 때가 많다. 그럴 땐 "기사를 쓰는 것 외에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면서도, 정말이지 크게 돕고 싶다. 기사의 흥행도 흥행이지만, 어떻게든 공론화를 시키고 싶고, 그러지 못했을 때 죄송하다.
이런 순간이 유달리 나에게만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현장에 가까이 있는, 훌륭한 선배와 동료가 많다. "사명감 없으면 못할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현장이 있다. 사명감 없어도 이런 '현장'에 떠밀려서 기자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