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연 Oct 03. 2020

(14) 사명감이 없더라도

주로 욕을 먹는다. '기레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가끔 "사명감이 대단한 것 같다"는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십중팔구 이쪽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경우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기웃거린 적이 있거나, 기자 친구가 있을 때가 많았다. "빡빡한 업무 강도에 비해 대가가 적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오해도 있다. 특히 '사명감'에 대해 "타고난 정의로운 성향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몸이 배배 꼬인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솔직하게 말하면 타고나지 않았고, 그다지 정의롭지도 않다. 그보다는 "이 일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대한 현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1월 '배드파더스' 재판은 15시간 동안 진행됐다. 자정이 넘는 시간에도 방청석은 기자들로 가득 찼다. 예상을 뒤엎고 무죄가 나왔을 땐 모두가 환호했다. 법정 밖에서 즉석 기자 회견장이 뚝딱 만들어졌고, 변호인단은 "축배를 들러 가자"고 외쳤다. 눈빛만 봐도 서로 '그동안 고생많았다'고 하고 있었다.


없던 사명감도 생기게 만드는 게 이런 현장이었다. 사건 관계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사를 대충 쓸 수 없게 만드는, 재미있고 정확하게 안 쓰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그런 거대한 느낌이 있다. 이날 50 페이지가 넘는 속기록을 1페이지 분량의 기사로 정리하는 건 그 자체로 뿌듯했다.


성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자 측과 통화할 때도 비슷하다.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걸려오면, 수화기 너머 상대는 울먹일 때가 많다. 그럴 땐 "기사를 쓰는 것 외에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면서도, 정말이지 크게 돕고 싶다. 기사의 흥행도 흥행이지만, 어떻게든 공론화를 시키고 싶고, 그러지 못했을 때 죄송하다.


이런 순간이 유달리 나에게만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더 현장에 가까이 있는, 훌륭한 선배와 동료가 많다. "사명감 없으면 못할 일"이라고들 하지만, 그보다는 나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현장이 있다. 사명감 없어도 이런 '현장'에 떠밀려서 기자 일을 한다.


이전 13화 (13) 숙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