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4) - 일상의 소중함
1.
집 앞 정류장 이름이 '봉제산 정상' 이었다. 실제로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봉제산을 산책할 수 있었다.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높은 지대에 놀라 기함 하기도 했다.
2019년의 강수량이 높았다. 쏟아졌던 비만큼 눈도 많이 내렸던 한 해였다. 이 높은 도로에 얼음이 얼었는데 자동차가 굴러가는 것이 신기했다.
B는 나를 걱정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미끄러질까봐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전셋집에 와서 새로 생긴 걱정이 아니고, 신림에 살때도, 성남에 살때도 눈만 내리면 B의 입에서 주기적으로 나오는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지대까지 높았으니 더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강원도 영동 지방의 산골 소녀로 눈에서 미끄러져 본 경험이 없었다. 구두를 신고도 매끄럽게 잘 다녔다. 오히려 나는 B가 걱정이었다. 반대로 B는 눈 구경이라고는 몇 번 해보지 못했을 것이 뻔한 남부 지방의 사람이었으니까.
밤새 내리는 눈을 보며 걱정을 읊는 B를 보며 웃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따듯하기도 해서 그의 걱정을 내버려두기로 했다.
막 내린 눈은 잘 얼지 않는다. 눈이 얼기 시작하는 때는 낮이 지나고 저녁이 찾아올 즈음부터다. 내리쬐는 햇살에 흐물흐물 녹아내린 눈들이,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얼어 붙는다. 그래서 얼기 전에 눈을 치워야 그나마 쉽게 도로를 낼 수 있다.
주말 출근하는 날이었다. 차가운 밤을 지나고 난 도로는 이미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유유히 얼음 사이를 걸어 아침 출근 길을 떠났다.
출근한 사이 간간히 B에게 카톡을 했다. B는 이거 하는 중이다, 저거 하는 중이다, 하더니 갑자기 길가에 눈을 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완전 꽝꽝 얼어서 잘 깨지지도 않는다고. 그러다 어디서 찾았는지 염화 칼슘을 찾아서 길가에 뿌리고 있었는데, 동네 어르신들 다 나와서 여기도 뿌려달라 저기도 뿌려달라 해서 '이게 뭐지.' 했단다.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회사에서 베실베실 웃고 말았다.
웃기는 일은 퇴근 길에도 벌어졌다. 허벅 다리를 써가며 힘겹게 집을 오르고 있었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서자 얼어붙어있던 눈들이 깨져 있는 것이 보였다. B가 치워놓은 골목길이었다. 한겨울이었는데 오히려 더웠다고 말하는 B와, 그런 그가 최선을 다해 치워낸 도로를 보고 있자니 꽤나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고맙다고, 덕분에 안 미끄러지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은 안전해져서 고마웠다기보다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B는 눈이 오는 날이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려놓고는 했다.
2.
어느 날 갑자기 귤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B는 나에게 다시 귤이 먹고싶냐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괜히 게으르게 침대에 늘어졌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밤 산책은 더더욱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 집에 오고 나서부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바닥을 쳤다. 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아랫동네로 내려갔다가 또 다시 오르막을 올라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산책을 하고 싶은거지 '운동'이 하고 싶은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사오는 것을 귀찮아한다는걸 눈치챈 B가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선선히 말했다. 겨울이었지만 한밤중이었고, 또 귤이 어디서 파는지도 알 수 없었다. B가 집을 떠나 아래로 내려갈 때, 나는 후다닥 테라스로 나가 내려가는 B의 정수리를 내려다 봤다.
한참을 기다리자 B의 정수리가 보였다. 한 손에 검은색 비닐봉다리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오는 B.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주던 B. 정수리를 보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긴 처음이었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잊혀지지 않고 회자되는 사랑스러운 기억.
3.
필이 짜르르 왔어. 이런 집 다시는 없어. 를 느끼게 해 줬던 전세집의 테라스. 그 테라스가 아니었다면 다른 집을 골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나는 이 테라스를 아주 잘 활용하고 싶었다.
인조 잔디를 깔고, 캠핑용 의자도 장만하고, 작은 텐트를 치고 거기서 영화나 책을 보기도 했다. (담배 냄새가 아랫집, 옆집에서 올라와서 오래는 못 있었다 ㅎ...) 9시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코로나 시국에 테라스 공간이 작은 파티장이 되어 주기도 했다.
햇빛도 들고 비도 내리니 작은 텃밭을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없는게 없다는 다있소에 마침 텃밭 키트가 나와있었다. 화분, 흙, 씨앗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미니 텃밭 키트. 우리는 고민 끝에 상추와 적겨자가 있는 키트를 선택했다.
씨앗을 넣고 흙이 다 젖을 정도로 물을 줬다. B와 매일같이 테라스에 나가 새싹이 올라왔는지를 확인했다. 1주일이 지났을까? 흙을 헤치고 씨앗이 몽글몽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B는 약간 감격한 얼굴로 '농부들이 왜 농사를 짓는지 알 것 같아.' 하고 중얼거렸다. 가끔 B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새싹을 솎아내고 새싹 비빔밥을 해먹었다. 쪼끄만게 자기도 겨자라고 겨자 맛이 나는게 신기했다.
상추와 적겨자 옆에 뿌리가 난 대파 하나를 함께 심어 주었다. 마트에서 사 온 뿌리 대파의 뿌리가 아주 깨끗해서 이게 살아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대파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대파의 경의로운 생명력이 놀라웠다.
미니 텃밭을 계속 했다면 좋았겠지만, 텃밭에도 끝이 있었다. 한 두달간 매일같이 텃밭을 확인하던 것이 시들해져, 테라스를 방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1주일.. 2주일..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텃밭의 존재가 ! 하고 떠올랐고, 나는 두려움에 휩싸인채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텃밭의 상태를 확인한 나는 충격에 빠졌다. 분명 이파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하던 적겨자였는데, 이파리는 온데간데 없고 꽃대가 엄청나게 자라나 꽃을 피웠던 것이다. 하필이면 여름에 접어들어 비도 오지 않을 때였다. 물도 없이 햇빛만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건조해 보이는 꽃과, 갈색으로 변한 높다란 꽃대가 그로테스크하게 보일 정도였다.
상추의 상태도, 대파의 상태도 영 좋아보이지 않았다. 충격 받은 나는 다시는 텃밭을 보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즐거웠던 도시 농부 생활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