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가 있었다. 행복한 감정을 느낀 날이면 불행한 사건이 꼭 찾아오는 징크스. 친구와 함께 놀다가도, 학원에서 시험이 끝났다고 노래방을 보내줘도,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다가도 그 날 어떤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온전히 행복할 수 없었다. 그 날 그 날의 어떤 사건들을 마주할때면 역시, 행복하지 말 걸 그랬어 하며 스스로를 탓하고는 했다. 실제로 행복한 일이 생겼을때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써본 기억도 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징크스가 서서히 깨졌다. 어느순간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징크스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 몸에 베어왔던 습관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는 없다. 나는 불안도가 높은 어른이 되었다. 어떤 일을 해낼때 꼭 사고가 일어날 것처럼 강렬한 불안감을 느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져 해낼 수 없을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막연한 불안함에 휩싸이고는 했다. 전제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약 1년동안 결혼이 엎어지지 않을지 혹은 어떤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를 걱정했다. 종래에는 내가 해낼 수 없는 행사처럼 느껴져서 어떤 순간 파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A에게 결혼준비를 일임한 것은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니 타인에게 무신경한 나보다 A가 더 잘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결혼 준비에 욕심이 없었다. 웨딩홀도, 드레스도, 결혼반지도 다 아무래도 괜찮았다. 유일한 욕심이라면 꼭 가성비로 해내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A는 결혼식에 관심이 나보다 높은 편이었다. 결혼이 꼭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ISTJ 특유의 할일이 생겼을때 해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던것 같다. A의 SNS 알고리즘이 결혼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결혼과 관련된 포스트들을 나에게 이것저것 공유해주기도 했다.
가성비로 결혼식을 해내고 싶었던 나는 스튜디오도 생략했다. 나고 자란 강원도 동해 바다 앞에서 스냅사진을 찍어 스튜디오 사진을 대체하기로 했다. 장소가 강원도였던 이유도 별거 없었다. 제주도까지 가는 비행기 티켓, 숙소, 렌트비, 뭐 그런 것들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돈을 아끼겠다고 스냅으로 대체한건데 스튜디오보다 비싸게 사진을 찍을수는 없었다.
스냅사진 업체는 두 곳의 업체를 두고 고민했다. A가 두 곳 중 한 업체의 퀄리티가 더 높은것 같다고 나에게 강력 추천했다. 내 취향은 너무 마이너한 편이라, 이럴때에는 A의 의견을 따르는게 좋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스냅사진 업체가 정해지고 촬영 날짜까지 예약한 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다. A는 신나게 SNS로 헤어 메이크업샵 업체들을 공유했다. 여기저기 유명한 헤메샵들을 찾아보는 그가 웃겼다.
“왜 이렇게 욕심을 부려?”
“아니야.”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봐. 누가 이렇게까지 찾아보는지.”
그랬더니 갑자기 A는 사실 자기 욕심쟁이니까 조용히 하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비밀을 지켜줬어야 했는데 결국 이 자리에서 밝히게 되었다. 결혼준비할때 A는 엄청 욕심쟁이였다.
나는 A의 욕심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충이라도 괜찮다고 여겼던 많은 부분이, A의 꼼꼼함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A의 욕심쟁이 같은 면모가 없었다면, 우리의 결혼식은 어땠을까? 아마도 더 단출하고 소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만족스러운 기억을 가질 수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가 참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나 그 다름이 결국은 서로를 보완해주는 요소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욕심도, 사랑의 한 방식일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