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사람에게 결혼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떤 이는 상대를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어떤 이는 미래의 자녀를 위해, 또 어떤 이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에 대한 이유와 의미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2.
대학생 시절, 겨울방학 동안 군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주신 분께 결혼에 대해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결혼을 해서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분은 "절대적인 내 편이 생기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결혼 후, 나도 종종 같은 질문을 받았다. 미혼 친구들은 결혼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고,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하면 "연애만 하지, 왜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긴 연애와 동거를 거쳐 결혼했기에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3.
A가 첫 직장을 퇴사한 후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필이면 나 또한 이직으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을 때였다. 나는 A를 성남에서 데려와 내 자취방에서 머물게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한다는 ‘화병’을 옆에서 직접 경험했다. A는 몸이 뜨겁다며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낮이 되면 모든 의지와 힘을 상실한 채 방황했다. 처음 보는 A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더욱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점에서 A와 나는 닮은 부분이 있었다. 나 또한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실패로 끝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남들은 쉽게 헤쳐나가는 길을 나만 바보같이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더 나아가, A의 실패가 나를 만나 생긴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후 계획을 약간 앞당겨 성남과 신림의 집을 정리하고, 함께 살 새 자취방을 구했다. 역까지 15분 정도 걸어야 했지만, 도림천이 가까워 산책하기 좋았다. 다행히 A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조금씩 현실감을 되찾아갔다.
4.
고난이 그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은 오르락내리락했다. 함께한 시간이 대체로 행복했지만, 예상치 못한 시련도 함께 찾아왔다.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아랫집과 윗집에서 동시에 누수가 발생했을 때, 극심한 층간소음에 시달렸을 때, 그리고 가정 내 불화까지 겹쳤을 때,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었다. A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공감하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A는 내가 하지 못했을 일들을 척척 해냈고 그것이 그당시 나에게 큰 의지가 됐다. 평소에는 자주 다투었지만, 불행이 닥쳤을 때는 오히려 단단히 뭉쳤다. 오르락내리락 널뛰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과는 무슨 일이 생기든 함께 헤쳐나갈 수 있겠구나.
5.
사춘기 시절, 나는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곤 했다. 세상이 기계처럼 돌아가는 와중에 나 하나쯤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부재를 슬퍼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떤 감정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지면 A가 마음 아파할 것이라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됐다. 변화한 감정의 메커니즘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건강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조금만 아파도 큰 병에 걸린 것처럼 걱정했다.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처럼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고, 알고리즘은 점점 우울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확실한 것은,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A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
과거의 나는 결혼을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여기고, 타인과의 결혼이란 불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타인과 타인이 만나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겠냐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결혼 후 명절마다 A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친척들을 만났다. 남부는 3월 초부터 여름날처럼 햇살이 빛났다. 날씨가 따듯해서인지 마음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노곤노곤한 마음으로 새로운 가족들을 보자 이번에는 A의 근간이 바로 보였다. 남녘 바다의 햇살과 양분을 받아 단단한 나무처럼 자란 A. 따듯한 사랑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으니 그닥 무서울게 없었겠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없어도 결국은 극복할 수 있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깨달음이 나에게 어떤 편안함을 주었는지, 걱정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결혼 후 예상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환경도, 사람도 바뀐 것이 아닌데, 관계의 형태가 달라졌다.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겼고, A를 인생의 진정한 반려자로 생각하게 되었다. ‘반려자’라는 거창한 표현보다, 함께 인생이라는 사업을 운영하는 ‘동업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정말로 삶을 함께 헤쳐나가는 파트너가 된 느낌이다.
결혼을 추천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함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면, 결혼은 단순한 제도가 아닌 서로를 지탱해주는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