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할머니

by 사서 B

대학교 4학년 보육실습을 하던때였다. 실습때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커리큘럼이 괜찮은 어린이집을 찾아갔었다. 앞서 같은 곳에서 실습을 수료했던 2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두 친구 다 너무 힘들었다고 말해서 겁에 질린 상태로 실습을 시작했다.


다행히 실습은 생각했던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9-6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음날 수업에 쓸 교구를 부랴부랴 만들고, 매일 관찰일지와 실습일지 같은 것들을 써야 했는데 내 체력이 도무지 따라주질 않았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 없어서 주말 아르바이트도 함께 병행 하고 있었다. 주말동안이라도 교구를 열심히 만들어뒀어야 했는데 주말 알바를 하니 체력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받는데 쉴 시간도 없었으니 병이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금까지도 동기들을 포함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실습을 끝내고 바로 신우신염을 앓았다. 실습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감기를 옮았는데, 독감이 왔던건지 열이 오르고 숨도 못 쉴 정도로 기침을 했었다. 잦은 기침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고, 실습 마지막 날 8시간 아이들을 통솔하는 올데이 수업날이 되어서야 쥐꼬리만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 즈음 내 생일이 돌아왔다. 방학 중이던 A가 놀러왔다. 퇴근 후 마른 걸레처럼 쥐어짜진 나를 데리고 내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 문을 여니 반짝거리는 조명과 케익, 직접 만든 피자와 파스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마음껏 축하를 받았다.

다음날 수업 준비 때문에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몸이 좋지 않아 잠시만 쪽잠을 자겠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아 더 버티고 있을 힘이 없기도 했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이 많았다. 실습 담당 선생님과 논의 끝에 음률수업을 하기로 했어서, 재활용품들이 많이 필요했다. 실로폰처럼 쓸 캔 32개와 두꺼운 종이로 접은 박스 8개, 페트병 20개 등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장 다음날까지 20세트를 만들어 가야했다. 달콤한 쪽잠에서 깨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일단 당장 시간이 없었다.


발작하듯 눈을 떴을때, 보였던 것은 일렬종대로 건조 중인 페트병과 빨주노초 시트지로 알록달록 포장된 캔들 이었다. 퇴근하면서 사왔던 두꺼운 종이들도 박스 모양으로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한겨울, A가 한밤중에 혼자 나가 재활용품들을 구해 왔던 것이다. A는 근처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과 편의점들을 돌았다고 설명했다.

깜짝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도, 감동적인 편지를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감동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내가 힘들어할 때 A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A는 늘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행동 하나하나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이 이야기를 또 하고 있겠지. 그때도 A에게 그때 감동했었다고 말하고 있을거다. 그리고 A는 이제 제발 그 이야기는 그만 얘기하라고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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