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J와 ENFP

by 사서 B

A의 MBTI는 ISTJ. 외향과 내향의 비율이 반반이지만 I 성향이 살짝 더 높은것 같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말이 많은 편도 아니면서 (오히려 적은 편이면서) 사람 만나는걸 좋아했다. STJ 성향에는 변함이 없다. 우울해서 빵 사 왔다는 말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무슨 빵을 샀냐고 물어보는 A.

평소 표정 변화와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얌전한 편이다. 크게 소리 내서 웃는 경우가 적다. 예전에는 데이트 할 때마다 코스를 짜 오는 편이었다. 뭐 할지 그 자리에서 고민하는것보다 정해오는 것이 더 편하다고 했다. 지금은… 모르겠다. 소파에서 늘어져 있는걸 좋아한다. 가끔 안온하고 따듯한 곳을 좋아하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보인다.


나는 ENFP다. A와 교집합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는거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모르… 모르진 않았다. 나는 늘 은은하게 내 안의 자기혐오가 있어서 늘 다른 사람과 만나길 바랬기 때문이다. 오히려 몰랐던 쪽은 A였을 것이다. 사실 A는 나 말고 자기랑 비슷한 사람과 만났어도 잘 살았을것 같다.


외향, 내향 성향은 각자 비율이 극단적이지 않아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STJ, NFP는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타고난 기질 같은 거였다. 이 설명에서 우리가 얼마나 박터지게 싸웠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싸움한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데, 나는 오히려 너무 많이 싸워서 어떤 걸로 싸웠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실정이었다.


우리가 연애할때는 MBTI 테스트가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교양수업으로 심리학 수업을 들으면 꼭 한번 테스트 받아봤다가, 이후 잊어버리기를 반복했었다. 연애 1-2년이 지났을때야 스멀스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MBTI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왜냐면 MBTI를 통해 A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싸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싸움의 빈도를 많이 줄일 수는 있었던 것 같다.


연애 초에 A가 가장 당황했던 행동은 내가 갑작스럽게 A의 자취방에 찾아가는 행동이었다. 서울에서 대외활동 하다 만났던 터라 각자 자취방이 꽤 멀었다. 경기도에서 경기도 가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A가 기뻐할 얼굴을 기대하며 두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했는데, 마주한 얼굴은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그게 내 입장에선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서운했다.

그뿐만이 아니고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지, 특별한 취미생활도 없으면서 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는지, 도대체 미리 시작한 과제는 언제쯤 끝나는 것인지…


반대로 A는 브레이크 고장난 핀볼처럼 날뛰는 날 보고 당황스러웠으리라. ISTJ는 과거의 경험에 반추하여 자신의 행동패턴을 수정한다는데, 지금의 A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 모든 의사 결정을 일임하기에 이르렀다. 하도 손바닥 뒤집듯이 계획을 뒤바꾸니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계획이란다.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내 기복이 얼마나 심하냐면, 세워뒀던 계획을 갑작스럽게 모두 뒤엎고 새로운 목적지로 나아갈 정도였다.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었는데 전날밤 나폴리행 기차를 포기하고 정반대인 베네치아로 당일치기 여행을 간 적도 있었다. (나폴리와 베네치아의 거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남한 끝에서 북한 끝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화를 내다가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고 이유가 타당하면 받아들여주는 것이 또 ISTJ의 특징이다. 결국에는 내 의사를 받아들여주는 A를 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가끔 고맙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르다. 나는 여전히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A는 차분하고 현실적이고 계획적이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쪽이 빨랐다. 사실 연애도 결혼도 결국에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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