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던 때는 4평 원룸에서 함께한지 약 6개월 정도 되는 시점이었다. 각자 본가가 멀고 월세 두 번 내는 것도 아깝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따로 살 이유가 없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자의 이유와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치명적이라고 생각할만한 부분은, 동거하다가 헤어졌을때 다음에 만나는 사람이 받아 들일 수 있느냐겠지? 어떤 친구는 나에게 만약 헤어진다면 다음 사람에게 꼭 동거의 여부를 말해줘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나는 뭐 그런것까지 고려하진 않았던것 같다.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으로 연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A와 헤어지면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동거라는 것도 내 비이성적인 행동 중 하나였을 것이다. 같이 있는게 행복한데 어쩌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도파민이 나온다고.
서울에는 허위매물이 많았는데 다행히 성남까지는 아직 괜찮았다. 원룸 근처 괜찮은 조건, 괜찮은 위치, 괜찮은 채광의 1.5룸이 나왔다. 월세가 살짝 높았지만 둘이 내면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살 수 있었다. 창문 앞을 가리는 건물이 없었고 서향이라 햇볕이 따듯하고 길게 들었다. 1.5룸으로 작은 집이라 에어컨 비용에도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그 집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드물게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누리는 얼굴, 우물우물하는 잠꼬대, 막장 드라마에 열중하는 옆얼굴 등 평소 보지 못했던 면모도 많이 보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큰 성인 남자를 귀엽다고 생각하게 될 줄 알았을까? A의 남성성에 열중했던 마음이 서서히 귀여운 것을 보고 어쩔줄 몰라하는 마음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A도 비슷하게 진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2.
사실 성남에서 살기 전까지 내 안의 성남 이미지는 네모 반듯한 분당의 이미지였는데, 구시가지는 생각했던것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가파른 언덕에 높지 않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역 바로 앞에는 사창가가 줄지어 있었고, 시장은 어떤 가축의 냄새가 나 들어가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재개발이 시작되어 천지가 개벽되고 있는것 같았는데, 당시 구성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라면 내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새로 구한 자취방에서 역까지 가려면 높다란 언덕을 하나 넘어갔어야 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나에게 약속이 있는 날이면 A가 지하철역까지 날 데리러 나오고는 했다. 그 날도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리니 휴대폰 배터리가 2%밖에 안 남아있었다.
전화기를 들고 지하철역에서 나와 천천히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날 데리러 오기 위해 걸어오고 있던 A와 통화를 시작했다. 집에 가면 매일같이 만나는 사람인데도 서로 할 말이 많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재잘 대느라 배터리가 없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A가 회사에서 할 발표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던 타이밍에 거짓말처럼 휴대폰의 전원이 나갔다. 다행히 3분이면 만날 거리였다. 혹시 반대편 인도로 걸어오고 있을까 싶어 반대편 인도를 살피며 언덕배기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군가 반대편 인도에서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
“!!”
다급하게 달려오던 사람은 역시 A였다. A는 나를 보고 반갑다는듯 팔을 휙휙 흔들었다. 그걸 보자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뛰어오는 A를 볼때부터 내 가슴 한 켠에 여름 햇살의 따스함 같은 것이 퍼져 나갔다. 빨간불이던 횡단보도의 불빛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다시 다급하게 건널목을 건너온 A를 보자마자 품에 와락 안겼다. 그 감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전화가 끊겨서 나 진짜 놀랐어.”
“배터리가 없었어.”
A는 핸드폰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가 나오질 않았다며, 무슨 일이라도 난건가 싶어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툴툴거리면서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귀여웠다. 타인에게 걱정받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 시기였다. 8평쯤 되는 1.5룸에 살고 있었지만 세상 모든 것들을 다 가진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있었다. 새벽 3시 산책할만한 공원도 없어서 골목골목을 누벼 종합운동장까지 밤산책을 나가고, 지나가다 500원짜리 꽈배기 도넛을 사먹거나 지하철을 타고 석촌호수에 걸으러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던 날들. 젊음이 무기라고, 그때의 우리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