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간 대수롭지 않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만났냐, 어떻게 고백했냐는 말에 대답을 잘 주지 못했다. 그냥 뭐… 대외활동 하다 만났지… 하고 말끝을 흐리기 일수였다. 앞으로는 이 글을 보여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연 타인이 우리의 만남을 이렇게까지 궁금해할까는 다른 문제이지만.
지난 연애를 통해 긴 시간 감정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약간 흐려졌었다. 일단 장기연애 후 결혼하는 것이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발언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2년 정도 연애하고 결혼하는게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아닐까? 콩깍지가 많이 벗겨지지 않고 아직 열정의 감정이 남아 있을 시점이다. 그정도면 설레는 가슴을 끌어안고 새 시작을 향해 나아가기에 아주 괜찮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2살과 26살은 여전히 까마득하게 어린 나이였다. 하물며 작은 실수로 임신이라도 하게 될까 걱정이 태산같던 시기였다. 책임지기에는 아직 손 안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 연애와 비슷하게 다 타버린 재가 되어 이별을 맞이할까 오랜 시간동안 걱정했다.
만난지 약 2년이 되는 시점 A는 졸업을 했다. 처음에는 시험 준비를 하다 취업 준비로 방향을 전향했다. A가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어느새 나도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졸업 전 바로 취업을 했고, 300만원을 들고 4평짜리 자취방을 구했다.
A가 자연스럽게 내 자취방으로 흘러들어왔다. 어쩌다보니 고시원만한 원룸에서 거진 동거를 하고 있었다. 그 좁은 원룸에서 어떻게 6개월 가량을 함께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할 따름이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도 그 시기를 가장 행복 했었던 시기중 하나로 꼽고는 한다. 첫 사회생활, 첫 돈벌이, 처음 맞이하는 사회의 차가움과 비정함 같은 것에 상처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우리는 그저 함께 할 수 있었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2.
무엇인가를 잘못 먹고 배탈이 났던 적이 있었다. 자취방의 화장실이 아래 위가 뚫린 유리로 된 문이었어서 A는 심지어 집 앞 지하철 역까지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새벽 중간에 깨서 화장실에 갈 일이라도 생기면 곤히 자고 있는 상대의 잠을 깨우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 와중에 배탈이 아주 단단하게 나버린 것이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침대에 잠깐 누웠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기를 반복했다.
배탈이 났다고 출근을 미룰 수가 없어서 여섯시가 되어서야 겨우 쪽잠에 들었는데, 나때문에 함께 밤을 지새웠던 A는 아침 여섯시가 되자 집 밖으로 나갔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거기까지 신경쓸 수가 없었다. 한시간이 더 지나서야 A가 돌아왔고, 겨우 잠에서 깬 내가 어딜 다녀왔냐 물었더니 아침부터 여는 약국을 찾아 나갔다 왔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분명 문을 열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가보니 문 연 곳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A도 오늘 하루를 시작해야하는데, 잠을 못 자서 분명 피곤했을텐데, 아프다고 하니 한시간을 넘게 주변을 돌며 열려있는 약국을 찾았다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사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걱정해주고 실제로 행동해줬던 경험이 드물었어서, 생소하기까지 했다.
‘별 것도 아닌데, 냅두면 나을텐데.’
나는 A에게 겨우 배탈정도로 이만큼 걱정하다가, 혹시 아이라도 갖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물어봤다. 농담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정말로 걱정하기 시작하는 A의 목소리를 듣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걱정스러운 얼굴과 걱정 어린 목소리가 진심으로 좋았다. 가끔씩 이렇게 아픈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한 배려를 넘어, 걱정 속에서 A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와 밀려오는 졸음을 가르며 약국을 찾아나서는 발걸음 속에서, 사랑이란 이렇게 조용하고 단단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