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 A는 내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적극적이거나 활발한 성격이 아니면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다. 연락하는걸 거리낌 없어 해서 주변에 여사친도 많았다.
나에게도 갑자기 카톡을 했다. 나는 연락하는걸 귀찮아해서 그 당시 연인에게도 2-3시간에 한 번씩 연락을 주고는 했었다. A의 연락은 더더욱 미뤘다. 하루에 두 세번 띄엄 띄엄 연락을 했다. 진짜 그닥 대수롭지 않은 연락이었다. 대외활동이 1시부터라 활동 전에 밥도 같이 한두번 먹었었는데 그때의 대화도 진짜 그닥 대수롭지 않은 대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A는 그냥 여자를 좋아했던것 같다.
그 시점 A와 상관 없이 이별이 진행되고 있었다. 고등학생때부터 5년을 사귄 연인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무겁게 생각했던터라 단 한번도 헤어져본적은 없었지만 권태기가 오고 갔던 횟수가 잦았다. 상대를 좋아했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그 즈음 나는 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해 지쳐가고 있었다. 5년이나 만나고 헤어지자니 후폭풍이 두려워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두 세 달 가량을 시간을 갖네 마네 하면서 질질 끌었다. 각자 시간을 가지자는 것은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달라는 뜻이라는걸 그때는 몰랐다.
이미 결론이 난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던 것은 14년의 여름 즈음이었다. 해가 쨍하게 내리쬐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어서 그때의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시간을 갖자고 해놓고 전화로 또 다툼이 있었다. 종래에는 내 입으로 헤어지자는 말이 먼저 불쑥 튀어 나왔다. 오히려 뱉고 나니 후련했다. 미련이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후 간만에 가지게 된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났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이런 저런 사람들에 A는 여전히 포함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본인 학교의 개교기념일이라며 심심하다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A의 학교와 우리 학교의 거리가 꽤 멀었지만, 자신이 이 근처까지 오겠다고 했다. 대외활동 같이 하는 오빠가 근처까지 온다고 해서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고, 친구한테 이야기 하니 친구가 약간 김칫국을 마셨다. 나는 친구에게 그럴리가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약속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했던 것은 이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친구에게 그럴리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네? 하며 이야기를 풀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A가 연애 감정을 갖게 된 것이 이 날부터였다고 한다. 마침 내가 그 날 바로 알아챈 것이다.
만남은 별 거 없었다. 영화 한 편 보고, 닭갈비 먹고 헤어졌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달라진 것은 A의 태도 뿐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달라진 A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A는 이 날 이후부터 매일 전화를 하려고 했고 연락도 더 자주 했다. 숨길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티를 낸다고 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A는 내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더 열심히 연락하고 더 열심히 만나자고 했다. 나도 죄다 거절했다.
크리스마스에 만나자는 A의 연락을 돌려돌려 거절 했다. 돌려 말한 것을 붙잡고 이렇게 저렇게 계속해서 만나자고 했다. 결국 답답함을 못 이긴 내가 먼저 전화기를 들었다.
“ㅎㅎㅎㅎ대쳏ㅎㅎㅎㅎ왜 이러시는거에요ㅎㅎㅎㅎㅎㅎ”
“아니ㅋㅋㅋㅋ 아니 나는 지금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ㅋㅋㅋㅋㅋㅋ”
크리스마스에 고백하려고 했다고 고백하는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A도 이 상황이 웃겼는지 한참을 서로 웃기만 했다.
“진짜… 진짜 마음 없어…?ㅋㅋㅋㅋㅋ”
“넵..ㅋㅋㅋㅋ넼ㅋㅋㅋㅋ….”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는 A의 지론이 있는데 ‘짝사랑은 사랑으로 취급하지 않는다’였다. 내 대답에 A는 미련없이 관계를 포기했다. 대신 그냥 선후배 사이로 편하게 지내자는 말을 했다. 부담스럽지 않았을때의 A는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도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가볍게 마무리 되어 좋았다. 그렇게 고백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