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환상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결혼까지 가게 되었냐, 혹은 어떤 이유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물어보면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첫 만남에 결혼할 사람 같다고 느꼈다던지, 물흐르듯 아무 장애 없이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었다던지. 처음부터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었던것처럼 말이다.
주변에서 왜 결혼을 할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좀 난처해지고는 했다. 연애를 9년이나 하고 결혼했지만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실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다 떠나서 내가. 결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구속을 지양하고 틀에 맞춰 사는 것을 몸 떨리게 싫어하는 나에게 결혼이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결혼을 하는 순간 자유의 일부분을 박탈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세대처럼 희생하며 살 자신도 없었고, 아이를 낳아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에도 자신이 없었다.
A를 처음 만난 곳은 고깃집에서였다. 대학생 대외활동으로 다같이 모여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A의 첫인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A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첫만남에서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내가 타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반면 A는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와 달리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곧잘 기억해내고는 했다. 그에게 나는 이 자리가 재미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얕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맞추다가 어느 순간 바깥으로 나가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그랬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루함을 못 이기고 그 당시 사귀고 있던 애인과 통화를 하러 나가고는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놀라웠다. 20명도 넘는 사람들의 첫 인상을 다 기억하고 있다니.
A는 목요일 공강이라 목요일 팀으로 배정 받았다. 나는 금 공강이라 금요일 팀. 1학기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른채 지나갔다. A를 다시 만난것은 여름방학 시점이 되어서였다.
사회복지재단에 취업하기 위해 스펙 한 줄 쌓으려고 온 선배들이 많았다. 여름방학이 되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위한 1달간의 실습을 위해 다들 자리를 비웠다. 사람이 줄어들자 임시로 목요일 팀과 금요일 팀을 합쳐 활동하게 되었다. 어차피 방학이었던지라 그렇게 운영해도 괜찮았다.
그 시점 나는 21살이었고 A는 25살이었다. 사실 여초 사회일 수 밖에 없는 사회복지재단 안에서 A는 나이가 꽤 많은 축에 속했다.
활동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는데, 종종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독특한 취향을 늘어놓고는 했다. A의 이상형은 쌍커풀이 없고, 눈이 크지 않고, 인상이 약간 흐릿한 여자라고 했다. 나이도 3살 이상 차이 나면 안된다고 단언했다. 너무 어려서 여자로 보기 어렵다나. 쌍커풀도 있고 눈도 크고 인상도 흐리지 않았고 나이차이도 많이 나던 나로서는 진짜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도 여전히 사귀고 있던 애인이 있었던 시점이었다.
활동은 같이 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없었다. 그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때의 나에게 A는 그냥 웃기는 사람이었고, A에게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였다. 사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남들처럼 운명같은 만남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