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의 해결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1. 집을 매도해 집주인을 바꾼다.
말 그대로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집주인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여러 조건이 맞아야했다. 일단 집주인과 연락이 원활히 되는 상태여야 하고, 집주인이 원하는 금액과도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집에 압류가 걸리기 전이어야 했다. 조건이 맞으면 전세입자들이 매매 연락을 부동산에 돌렸다. 내 집도 아닌데 내가 팔아야 한다니.
놀랍게도 이 방식으로 탈출하신 분들도 몇몇 계셨다. 하지만 우리는 집주인과 연락이 원활히 되지 않는 상태였고, 또 집주인의 다른 집에 압류가 실시간으로 걸리고 있다는 연락을 보면서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집주인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2. 경매
전세 만기까지 기다리고 (혹은 압류가 걸렸다면 바로 경매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경매 절차가 시작되기를 또 기다려서, 경매가 시작되면 배당분을 신청하거나, 전세금으로 이 집을 낙찰 받는 방법이 있다. 보통 전세 사기 매물의 경우 전세금이 매매가 보다 높기 때문에 배당분으로 전세금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전세금으로 집을 낙찰 받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1000채 가까이 집을 갖고 있다는 우리의 집주인이, 세금을 95년도부터 납부하지 않아 차례차례 압류에 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금 때문에 압류가 걸리면 국세가 우선시 되기 때문에 전세금이고 뭐고 보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우리는 계약한지 4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기도 해서, 만기까지 기다리기에 너무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3. 집 명의 이전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집 명의를 이전 받았다. 전세금은 A의 이름으로 받았기때문에 집 명의는 내 이름으로 받았다. 전세로 들어온 집, 그것도 빌라의 명의를 이전 받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생애최초대출, 생애최초청약, 신혼부부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들을 포기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집주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을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받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카페 글을 정독하던 중, 집을 매매로 넘겨받았다는 글이 있었다. 전세는 그대로 유지하고, 전세금 그대로 명의만 이전했다는, 요즘 성행하는 '무갭투자'의 방식으로 넘겨받았다는 글이었다.
A가 중개 보조인과 연락이 닿아 새로운 집주인의 연락처를 들고 왔다. (중개보조인은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겠지.) 그 연락처도 연락이 닿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는데, 우리가 집을 매도받고 싶다고 말하자 귀신 같이 답장이 왔다. 500만원을 주면 명의를 이전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황당했다. 돈을 벌 기회가 생기자 귀신 같이 답장을 한 집주인도 황당했고, 남의 돈을 갈취해놓고 또 다시 돈을 벌려고 모든 궁리를 다 하고 있는 이 상황도 황당했다. 이 상황에서도 을은 우리였다. 계약서에 남았던 '을'의 호칭이 그 시점까지 우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대부분 전세 만기가 되어서 전세 사기임을 깨닫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문제는 전세 대출 연장이었다. 전세 만기가 되었다는 것은 전세를 위해 받은 대출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은행은 개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집주인은 연락이 안 되고, 은행은 전세가 연장 되었다는 증거를 가져오라 했다. 증거가 없으면? 전세 대출을 꼼짝없이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오고, 그대로 굴러 떨어지면 신용불량자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A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양지 바른 곳에서 햇살을 받고 자라 온 A를 붙잡고 진창을 구르게 될까봐 두려웠다.
500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번만 더 고민해달라 사정했더니 350 이라는 숫자가 돌아왔다. 우리는 고민했다. 그들을 또 다시 배불리는 것이 맞는건지. 한번도 모자라 두번을 사기 당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누구도 또렷한 답을 주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고민 끝에 집 명의를 이전 받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