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완)

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by 사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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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집을 매입하면서 A와 이야기 했던 부분이 있었다. 매매 시점부터 1년을 산 뒤, 세금 절세가 가능한 1년 뒤에 맞춰 집을 매도하자고 이야기 했다. 시세 차익 같은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손해 없이 나오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집 명의가 내 것이 되었으니 살려면 더 살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더 살고 싶지 않았다.


다방면의 노력 끝에 1년 뒤 집을 매도할 수 있었다. 350만원을 더해 딱 우리가 지출한 금액 만큼은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전세사기를 당한 후, 전세 시장을 지켜보니 중개업자들이 죄다 사기꾼으로 보였다. 아닌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내가 본 전세 매물의 8할 이상은 사기였다.


집이 팔렸으니 같이 살 집을 다시 구해야하는데, 또 다시 전세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진짜 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 전세를 포함해 집을 팔고 수중에 7천만원이 안 되는 돈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그 시점에는 그 돈으로 매매할 수 있는 아파트가 남아있었다. 조퇴, 반차를 써가며 집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임대차 3법이 시행되고, 갑자기 천정부지로 집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집이 나가서 없다고 대답했고, 어떤 부동산에서는 주인이 매물을 거뒀다고 이야기 했다. 부동산까지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을 갔는데, 그 지역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구석진 구축 아파트를 추천 받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아파트 값을 바라보면서 애가 닳았다.


있는거라고는 수중에 쥐어진 작은 돈의 예산과 예산에 맞는 집 뿐이었다. 돌고 돌다보니 20년 넘은 구축 아파트와 투룸 오피스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집도 내가 살 집이면 느낌이 팍! 하고 온다는데, 우리에게는 그런게 없었다. 심지어 A와 내 의견이 갈렸다. 하여간 이럴때는 꼭 의견 통일이 안 됐다.


구축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한번도 하지 않은 집이었다. 할머니와 손자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20년 연식 아파트답게 집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가격대가 좀 있어서 예산에 꽉 채워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분명 리모델링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허덕일 것이 뻔했다.


긍정회로 소유자인 나는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면 되지 않겠냐고 A를 설득했다. A는 예산을 꽉 채워 어려울거라고, 그리고 이정도로 낡은 집에서 살기도 어려울것같다고 반대했다. A는 화장실 2개 방 2개로 나온 21평 오피스텔을 사고 싶어했다. 오피스텔이라면 예산도 꽤 넉넉하게 쓸 수 있었다. 끝없이 대화해도 결론이 안 났다. 선택지가 애매했는지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똑부러지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양보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한가지 징크스가 더 있다. 사실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징크스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할 때, 한 번에 해결되는 법이 없다는 것. 산만했던 기질 탓에 일을 시작하기 전 꼭 무엇인가를 하나씩 빠뜨려서 생겨난 징크스였다. 집을 사는 것은 얼마나 큰 일인가. 역시 그 과정에도 한번에 되는 일이 없었다. (결혼 준비도, 이후 청약이 되어 서류 준비를 하고 대출을 받을 때도 그래서 A가 나서서 일을 처리 하고는 했다. 내가 하면 꼭 내 실수로 모든걸 망쳐버릴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 날 똑같은 구조의 집을 두 개 봤었는데, 둘 중에 한 곳으로 하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에 연락했다. 계약을 알아보겠다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던 부동산 측에서, 갑자기 집주인이 매물을 거뒀다고 계약이 어려울것 같다고 연락했다. 하여간 결론을 내기까지 너무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짧은 고민 끝에 다른 한 집으로 계약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다행히 이번에는 계약금을 걸 수 있었고, 매매 계약일까지 정할 수 있었다.


담보대출을 알아봤다. 현재 우리가 가진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했고, 전세집에서 나와 이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입주하는 집의 입주청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등을 결정해야 했다. 전세 사기가 내 안의 트라우마로 남아 계약일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로 산 집이 다 무너져가는 폐가로 나와, 역시 또 사기였다고 생각하는 악몽을 몇 번이나 꿨다. 등기부등본에 A의 이름이 올라오기 전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잔금일이 되어서야 집주인을 볼 수 있었다. 집주인은 할아버지에 가까운 나이대였는데, 스크루지 같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지금 세금때문에 이 집을 팔지만,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아냐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실거래가도 아니고 호가였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모든 중개 과정이 끝나고, 중개비를 이체했다. 법무사와 우리 모두 부동산을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스크루지 할아버지가 자기 중개비를 우리더러 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이렇게 올랐는데 중개비는 우리가 내는게 예의라며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렸다. 싸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드릴 돈이 없다고 죄송하게 됐다고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사실 정말 돈이 없기도 했다. 대출이 이렇게 빠듯하게 나올줄 몰랐기 때문에.) 중개업자는 난처한듯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스크루지 할아버지는 양보가 없었고 우리는 부동산에서 거진 30분을 실랑이를 했다.


떠넘기다시피 이야기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법무사도 함께 나왔고, 어쨌든 잔금도 보내고 계약 과정은 모두 끝났으니 계약이 파기 될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기분이었다. A와 나는 집을 사고도 하루종일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스크루지 할아범… 근처 살던데… 지나가다 보게되면 꼭 뒷통수 한대는 때려주자고 다짐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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