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후에는

by 사서 B

1.

나도 나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 둔한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꽤 예민한 편이고, 금방 적응하는것처럼 보이다가도 사실 돌이켜보면 적응에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하는 귀찮은 성정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때부터 타지에서 생활했으니 새 집에도 금방 적응했어야 했는데, 이사 후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사실 이전에는 금방 금방 적응하고 잠도 금방 들었던 것 같은데, 과연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전세사기를 당해서인지 이 이후로부터는 이사 후 적응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 했다. 이사 전에도 악몽에 시달렸지만, 이사 후에도 여러 차례 악몽을 꿨다. 심지어 이제는 정말로 ‘내 집’을 사게 된 터라 무를 수도 없었다. 작은 하자가 나오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지 과도하게 걱정하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착실하게 집과 주변환경에 적응해갔다. 새벽마다 종종 깨어나기도 하고, 잠꼬대를 하는 날도 있었지만 분명 조금씩 나아진다는 감각이 있었다.

회복의 과정에는 여전히 A가 있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하루의 잔여물을 A는 능숙하게 치워주었다. 어지러운 감정의 먼지를 털어내듯, 어깨를 한번 토닥이듯, 별 것 아닌 일처럼.


2.

출근이라는 과정은 나를 기쁘게 하지만 지치게도 하는 것이다. 일을 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 하지만, 긍정적인 반향보다 자기 혐오를 더 물씬 마주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알게 되었다.

물미역마냥 녹초가 되는 퇴근길이 있다. 그런 날에는 지하철도 버스도 타고 싶지 않다.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유독 그렇다. 그런 날이면 집으로 바로 출발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는 했다. 카페에 앉아 A에게 지쳤다고 말하면 A는 망설이지 않고 회사까지 날 데리러 왔다.


퇴근한 어떤 날, 카카오톡으로 우울하다고 푸념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A는 언제나처럼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줬다.


“여보세요.”


“난 니니가 우울한걸 그냥 둘 수 없어.”


“ㅋㅋㅋㅋㅋㅋㅋ”


“드라이브 가자.”


“좋다.”


“치킨 먹고 드라이브 가자.”


날 너무 잘 아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그 날의 자기 혐오가 가볍게 떠올랐다. 고단한 하루가 누군가의 존재 덕분에 다시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삶은 자주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들이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를 내 곁의 누군가는 아주 잘 알아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견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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