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름이 오지는 않았지만

by 사서 B

오싹한 이야기를 다들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지인들에게 늘어놓기에는 소소한데, 혼자 간직하기에는 좀 이상한 일이 있었다. 사실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A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오피스텔에 살기 시작하고,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집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실은 그 집이 좀 무섭게 느껴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 없는 불편함이 몸에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전세 사기를 당한 직후였고, 넓은 집에 살게 된 것이 처음이라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으면 예민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예민함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매일 밤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원래 가위에 잘 눌리는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누군가 의도를 가진 손으로 내 몸을 만졌고, 행위의 직전까지 몰아붙였다가, 끝까지 가기 직전 잠에서 깨어났다.

가위만 눌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야한 꿈을 꿨다. 나는 무슨 욕구불만 인간이라도 된 줄 알고, 나름의 방법으로 해소를 해보려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매일같이 이런 꿈이나 꾸는 나 자신이 한심해서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A와 외식을 하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주차장에 경찰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향해 경찰 둘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을 못 참는 편이다. 만류하는 A를 뒤로 하고 경비실로 들어가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아,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와서요.”


경비 아저씨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뭐, 누가 집에서 파티라도 열었나보네? A와 나도 덩달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마침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던 경찰 둘이 내려왔다. 경찰차가 유유히 지하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외식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길, 이번에도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차와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엥? 또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왔나? 경찰들이 먼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층에서 멈춰섰다. 뒤따라 올라간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을 바라봤다. 마침 또 공교롭게도, 소란이 난 장소는 바로 옆 집 이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나와 옆집을 기웃거렸다. 이번에는 소방관들까지 등장했다. 가만 지켜보니 문을 열려고 장비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다.


내가 주변을 서성거리자 그 중 한 사람이 냄새가 난다는 혼잣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소방관이 마침내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궁금해 문 앞을 기웃거리려고 하자, 경찰이 나를 막아섰다. 복도 어느 선부터는 넘어오지 못하도록.

그제서야 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던 상황인지를 눈치챘다. 사람이 죽은 것이다. 혼자. 집에서. 꽤 오랫동안 혼자 남아 있어 냄새가 난다고, 한 아저씨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준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 황망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 A에게 상황을 이야기 했다. A가 복도로 나가 상황을 살피고 왔다. A도 밖에서 냄새가 약간 난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많은 주제에 세계 최강으로 겁이 많았던 나는, 혹시라도 집에 냄새가 들어올까봐 공포에 떨었다. 밖에 다시 나가기는 커녕 중문 앞에 있는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했다. 며칠동안 A에게 화장실 문 앞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샤워를 했다.


이후 한동안 나는 복도를 지나면서, 화장실을 가면서, 출근을 하면서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그런데 내 공포와는 별개로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끈덕지게 따라 붙던 가위도, 야한 꿈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마치 어떤 고리가 끊어지기라도 한 듯이.

편안한 잠을 자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성불하신건가 싶기도 했다. 사실은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해치려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그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세입자를 맞았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무것도 모른채 들어왔겠지. 나는 그들이 모르는 채로 오래오래 평안하기를 바랬다. 이 세상에는 모르는게 약일때가 분명히 있다. 내가 진실을 알게 되어 한동안 공포에 떨었던 그 날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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