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종종 너무나 작아서

by 사서 B

어느 겨울 신림동의 도림천을 따라 산책을 하던 때였다. 이야기를 하는건 언제나 나고 이야기를 듣는건 언제나 A였다. 조잘조잘 아무 얘기나 늘어 놓다가,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스물넷의 겨울, 손 안에 쥔 것이 무엇이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나는 둘 다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작은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세방으로 시작해도 좋고, 다이소로 혼수를 해도 좋다. 뭐 그런 반쯤은 농담 섞인 말이었던것 같다.


A는 내 말에 대답 없이 고개만 떨궜다. 자신의 지갑 사정을 탓했던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한 얼굴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A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회 생활도 내가 먼저 시작했고, 가난도 내가 가난한데 내가 돈이 없는걸 왜 본인이 미안해 하는 것인지. 나는 웃으며 A를 달랬다.


산책길은 고시촌에 다다라서야 끝이 났다. A가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침 아이스크림 생각이 모락모락 나던 찰나라 나는 대번에 화색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아무말도 없이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A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A는 황당해하는 나에게 설명을 덧붙여 줬다.


“너무 소박해…”


“뭔 소리야.”


“좋은거 먹고 좋은거 입고 해야 할 나이에…”


“왜 울어.”


“막 가방도 좋은거 사고… 옷도 좋은거 사고 해야 하는데…”


아이스크림 하나로 너무 기뻐하는게, 오히려 눈물이 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가난했던 건 아니었다. 옷과 가방에 관심이 없는 것은 그냥 무던한 천성때문이었다.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왔다.


“혹시 전생에 우리 엄마였어?”


소리 내어 웃는 얼굴에도 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글썽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한번씩 그 날의 눈물을 떠올렸다. 겨울 날의 산책, 아이스크림, 따듯한 눈물 한두방울.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것이 아직 어색하던 내가 어떤 분기점을 맞이했던 순간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나 자신을 애틋해하고 아까워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낡은 엽서처럼 두고두고 꺼내 바라볼수 있는 따듯한 기억에 여전히 나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나 자신과, 눈물 많던 겨울날의 A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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